‘영원한 러블리 걸’ 그녀를 분석하다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 샘 왓슨 지음 / 이봄

아프리가 봉사활동을 한 배우 김혜자, 이영애씨가 자신들의 에세이집에서 생애의 모델이라고 공통적으로 상찬한 인물. 바로 배우 오드리 헵번(1929∼1993)이다.

헵번은 ‘로마의 휴일’(1953), ‘사브리나’(1954), ‘파니 페이스’(1957),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마이 페어 레이디’(1964) 등에서 주인공으로 활동하며 세계 최고 여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은막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1988년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의 친선대사로서 아프리카 봉사 활동 현장에 나타났다.

과거의 우아한 여배우가 아닌 주름 깊은 할머니의 얼굴로 갑자기 등장한 헵번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아이를 안고 연민의 눈길을 보내는 그 모습에서 베풂의 정신이 풍기는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헵번은 평온한 가정을 꾸린 여성은 아니다. 20대 배우 시절엔 연기에 바빠서 약혼한 남성과 파혼을 했으며, 이후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쳐 중년 이후 독신으로 살았다. 그런 개인사를 가졌음에도 헵번에겐 ‘참한 여성’의 이미지가 있다. 말년의 봉사 활동에서 힘입은 것도 있지만, 그런 이미지가 사실은 젊은 시절부터 이 여배우에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것을 여러 인물들과의 인터뷰와 각종 영화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영화학자인 저자는 헵번이 30세가 넘어 연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주목한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홀리를 통해 영화 사상 최초의 모던 싱글걸 캐릭터를 발굴해 낸다. 저자에 따르면 홀리는 21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싱글걸들의 원조다.

‘티파니…’가 나오기 직전의 1950년대 말 미국 사회에선 남편을 출근시킨 뒤 부엌에서 빵을 굽는 가정주부가 여성들의 ‘워너비 굿걸’이었다. 홀리처럼 혼자 살면서 부자 남성들을 홀리는 여자는 당연히 ‘배드걸’이었다. ‘티파니…’의 홀리는 당연히 배드걸이어야 했다. 저자는 “영화의 원작 소설에서 홀리는 ‘콜걸’로 적시돼 나오고, 영화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를 비친다”고 했다. 그런데 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콜걸인 홀리를 그토록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로 기억하는 것일까.

영화 평론가 주디스 크리스트의 말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 “이 여성의 매력은 소년 같은 면모에서 나온다. 신체적으로도 약간 그렇지만 장난기와 영리함 같은 기질 때문이다. 메릴린에게는 없고 오드리에게는 있는 그 기질. 그녀는 빈틈없고 영리하다. 그녀는 콜걸이지만 우리는 그냥 내버려 두고 싶다.” 여기서 ‘메릴린’은 육감적 여성의 대명사인 바로 그 메릴린 먼로다. ‘티파니…’의 제작사는 당초 홀리 역에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인 먼로를 염두에 뒀다. 먼로도 관심이 있다는 의향을 비쳤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제작진은 섹스 심벌도 아니고, 마냥 어리고 순수한 롤리타 같은 여성도 아닌 제3의 캐릭터를 원했다.

헵번은 처음에 이 역할을 맡는 것을 주저했으나 제작진이 “홀리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로맨틱한 캐릭터”라며 설득하자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한밤중에 가난한 작가인 이웃집 남자 폴의 침대에 스스럼없이 들어가 함께 잠이 드는 모습을 이토록 사랑스럽게 해낼 수 있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헵번은 완고함이 아직 지배하던 시절에 ‘싱글걸’이 비록 콜걸일지라도 세련된 패션 감각과 함께 청순하면서도 귀여운 이미지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다른 배우였다면 가능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헵번의 영화 이력을 다 훑으며 할리우드 영화 현장의 흐름을 보여 주는 일종의 역사책이다. 그 역사를 바로 옆에서 본 듯이 소설처럼 묘사하고 있어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장재선기자 jeijei@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