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여백미 동양색채 물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때문에 주역이 아닌 주변 인물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 역사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난 8일부터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에 들어간 연극 ‘꿈속의 꿈’ 또한 그러하다. 삼국통일을 앞두고 신라의 김춘추(태종무열왕)와 김유신 사이에 벌어진 일화를 소재로 하고 있는 연극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삼국통일의 과정을 보여준다.

연극이 기반을 두고 있는 설화는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 나오는 이른바 ‘매몽설화’. 김유신의 누이동생 보희와 문희 사이에 꿈을 사고 팔았다는 내용의 ‘매몽설화’는 이렇다. “언니(보희)가 꿈 속에서 오줌을 누었는데 오줌이 흘러 나라 안에 가득 찼다. 동생(문희)이 장난삼아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삽시다’하고는 비단치마 한 폭을 꿈 값으로 주었다.”

이 기록에서 출발한 연극은 보희와 문희의 시각에서 역사를 파악한다. 즉 김유신과 김춘추의 권력욕에 휘둘린 희생양으로서 자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희와 문희의 미묘한 입장 차도 드러난다. 지난 2008년 서울연극제에서 대상과 희곡상, 연기상을 수상한 ‘꿈속의 꿈’은 동양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절제된 여백미와 한국적 색채로 가득한 무대 미학을 보여준다. 아울러 적절한 코러스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2008년 초연 무대와 지난해 앙코르 공연, 그리고 올해 공연에서도 잇달아 보희 역을 맡은 길해연 배우는 자매간 사랑과 남자와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면 연기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또 동생에게 사랑하는 이를 양보하고도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늘 동생 걱정으로 애틋함을 더하는 보희 역은 문형주 배우가 맡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장성희 극작, 신동인 연출. 공연은 23일까지. 02-889-3561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