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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1년 10월 21일(金)
火食의 시작은 생존 위한 진화
음식 익혀 먹으면서부터 에너지 양·번식률 증가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요리본능 /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인류는 언제부터 요리를 했고, 그 요리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인류가 시도한 최초의 요리 목적은 맛이 아니라 ‘먹기 쉽거나 소화가 쉬운 음식 만들기’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선사시대 불의 발견은 ‘요리의 시작’을 의미했다. 불은 딱딱하고 질긴 뿌리를 ‘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독성이 있는 뿌리나 풀도 무해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질긴 고기도 불로 구워 내면 부드러워졌다. ‘불로 요리하기’란 마치 스테이크의 굽기 정도를 고르듯 가벼운 선택이거나 미각을 위한 사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하버드대 진화인류학자인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 그는 불을 써서 요리하는 것이 인류의 혁명적인 진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음식을 익히면 그로부터 얻는 에너지의 양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생존율과 번식률이 높아지며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작용, 생태, 생활사, 심리, 사회에 급격한 변화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현생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사냥으로 포획한 날고기를 먹었다는 ‘육식(肉食)가설’에 맞서서 이른바 ‘화식(火食)가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만일 육식가설이 맞다면 왜 직립원인들은 턱과 치아가 작아졌느냐고 따져 묻는다. 구강구조가 약해진 것은 현생인류가 사냥한 동물의 질긴 날고기를 먹는 데 적응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논리를 진전시키며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익힌 음식은 미각의 즐거움을 주지만 우리는 익힌 음식에 의존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보통 동물’인가. 아니면 충분한 에너지를 육체에 공급해야 하는 생물학적 필요에 의해 익힌 음식에 의존하는 ‘특수한 종(種)’인가. 그러고는 기왕에 수행됐던 많은 연구 결과나 사례를 한가득 꺼내 펼쳐 놓고 분석한다. 결론은 의외다. 저자는 거친 음식과 익히지 않은 날것이 콜레스테롤과 체지방을 떨어뜨리지만, 음식 섭취량을 늘렸음에도 몸무게는 줄어들고, 번식 기능은 저하된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믿기 힘들지만 보통의 야생 환경에서 날고기 등만 먹는다면 아무리 많은 양을 먹더라도 급속하게 아사의 위험에 처하게 된단다. 그러니 먹을 것이 부족했던 선사시대에 요리하지 않은 생식이란 진화는 물론이고 생존에도 극히 불리한 조건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저자는 책에서 불로 요리한 음식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누누이 설명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고학적·인류학적·생물학적 연구 결과와 돌연한 사건·사고 등의 다양한 사례를 동원한다. 배가 난파하면서 가족과 바다 위를 38일 동안 표류한 선원, 자신을 납치한 인디언으로부터 도망쳤다가 숲에 고립돼 스스로 먹을거리를 조달하며 7개월을 홀로 버텼던 유럽계 브라질 여성, 호주 남부에서 북부까지 원정에 나섰다가 극한 상황에서 생식을 경험했던 탐험대 등의 사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현대사회에서 요리란 생존의 의미보다는 ‘쾌락’의 의미에 더 가깝다. 이제 현대인은 ‘요리’란 단어에서 취향과 입맛, 욕망 등을 떠올리게 됐다. 여기다가 요리가 환기하는 유년 혹은 가족의 추억이나 유대감 같은 문화적·정신적 의미 등을 덧붙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인류 기원의 진화 과정에 얽힌 비밀 코드를 읽어 내 흥미롭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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