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를 안고 산다면 ‘내안의 아이’부터 치유하라

가까운 사람의 사소한 한마디에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화(火)가 치밀어 오른다. 쉽게 멈출 수 없는 그 화는 어디서 왔을까?

베트남 출신 세계적 종교 지도자인 틱낫한 스님은 “화는 우리 내면에 있는 ‘아이’의 상처에서 왔다”며 “무의식 속에 꾹꾹 눌러 두었던 그 아이의 고통이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촉발돼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일깨워 준다. 틱낫한 스님은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는 우리의 화도 고통도 치유되지 않는다”며 “내 안에 있는 아이를 만나서 다독여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아이를 달래 주는 편지를 쓸 것”을 주문한다.

2002년 국내 출간된 ‘화’(명진출판)의 연장선에서 구체적 치유방법을 제시한 신간 ‘화해’(불광출판사)는 화와 상처를 치유하는 틱낫한식 심리처방전으로 상담심리가나 정신치료사들에게도 유용하게 읽힐 내용들이다.

‘화’가 그 원인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화해’는 화의 원인인 내면의 아이와의 화해를 통한 치유법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는 현대심리학에서 ‘자아’로 불리지만 연기법(緣起法)의 세계관이 지배하는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가 아닌 ‘무아(無我)’를 비유한 용어다. 연기법에 따라 스님은 “내면의 아이가 겪는 고통은 대개 우리가 어릴적 받았던 상처가 원인”이라며 “아버지나 어머니,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내뱉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에게 상처를 줬고,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둬서 지금까지 아픈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그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기 때문에 대를 이어 내려온 상처의 연결고리를 끊는 일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며 내 안에 있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고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8가지 지혜와 7가지 수행법을 제시한다.

스님이 제안하는 7가지 수행법은 ▲물건 치우기 명상 ▲16가지 호흡 수행법 ▲내 안의 아이에게서 온 편지 ▲양팔, 양 무릎, 머리로 대지와 만나기(오체투지) ▲평화의 편지 쓰기 ▲새 출발 ▲감정을 밖으로 쏟아 내기다.

‘물건을 치워라’는 말을 즐겨 쓴 중국 선사 임제 스님에게서 따온 ‘물건 치우기 명상’은 ‘수행은 생각이라는 물건을 치우고 지금 이 순간의 몸과 느낌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비유된다.‘내 안의 아이에게서 온 편지’는 편지 쓰기와 내 안의 아이가 하는 말 듣기라는 두 가지 수행을 합친 것이다. 내 안의 아이가 쓸 것이라고 짐작되는 편지를 쓰는 것이다. ‘평화의 편지 쓰기’는 누군가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속상하게 할 때, 그 사람에게 그 사실을 24시간 내에 말해야 한다. 스님은 “매우 속이 상해서 사랑이 담긴 말을 할 수 없다면 24시간이라는 마감일이 지나기 전에 그들에게 평화의 편지를 전달할 것”을 권한다.

‘새 출발’은 가족과 수행공동체 안에서 새 출발 의식을 하는 것이다.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에서 매주 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와 어려운 관계에 있는 사람과 해도 좋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새 출발 의식을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감정을 밖으로 쏟아 내기’는 감정 표출을 통해 진정한 치유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스님은 “방출과 위안의 과정에서 또는 고통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오는 강렬한 에너지는 몸 안에 그리고 신장, 간, 심장 등의 특정 장기에 뭉쳐 있을 수 있다”며 “태극권이나 기공 등의 치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 몸 안의 에너지가 소통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