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음 대통령의 條件

  • 문화일보
  • 입력 2011-11-1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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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논설실장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멸망은 필연이었다! 필연~! 이미 한달 전 미국 의회가 일도양단으로 처리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놓고, 어떤 결단도 못내리는 무능한 이명박 정권을 주시하자면 이명(耳鳴)처럼 윙윙 소리 내며 들려오는 이 치욕적인 말. 1903년 9월30일 백악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일본의 한반도 병탄(倂呑)에 손 들어주는 미국에 항의하러온 대한제국 주재 미 공사 호러스 알렌을 질타한다. “조선인들이 자신을 위해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을 (미국이) 그들을 위해 해주리라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된다.” 조선에서 미 공사관 서기관으로, 의사·선교사로 조선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가졌던 알렌. 격렬히 항의한다. 그러나 조선으로 허탈하게 돌아온 알렌의 눈앞에 다시 펼쳐진 장면들은 루스벨트의 판단이 옳았음을 생생히 입증한다.

“로마가 불타고 있는 가운데 네로가 유흥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고종)황제는 무희들과 즐기고 있는 것.”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도! 그리고 수도 한성의 치안도 책임지지 못하는 집권 사대부의 무능! 알렌은 마침내 자신의 판단이 오류였음을 고백하는 통렬한 보고서를 루스벨트의 아시아 정책통 윌리엄 록힐에게 보낸다. “우리가 감정적 이유 때문에 이 제국의 독립을 지원하려고 한다면 큰 과오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조선인들에겐 자치가 불가능하다. 조선은 일본에 속해야 한다.” 1882년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미국이 조선을 완전히 버리는 순간이었다.

지금 미국은 한·미 FTA를 처리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을 어떤 심경으로 지켜볼 것인가? 집권 한나라당은 반미세력과 농촌 표 의식해 행동을 주저하는 저 기회주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내년 총·대선에서 FTA를 반미의 불쏘시개로 만들어 정권탈환을 하려는 저 매국적 행위! 기본적으로 국가 지도력의 파산에 가깝다. 대통령도 국내에서 한 일은 단 3가지-국회 연설을 하겠다고 했다가 민주당에 퇴짜 맞고, 방미한 뒤 국회의원들에게 편지 한통 보내고, 다시 국회를 찾겠다고 했다가 역시 민주당에 퇴짜 맞아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 뿐. 국익을 방해하는 세력에 불같이 분노하며 목숨이라도 걸 수 있는 국가 최고지도자였다면? 정권 잡은지 3년9개월 동안 TV에 나와 탁자 쾅쾅 두드리며 국민을 설득하고, 대국민 특별담화 내놓고, 야당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설득하고, 집권당을 닦달하고 그래도 안되면 결단 내리고도 남아 돌았을 시간 아닌가?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 김일성의 6·25 남침에 대해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보고하자 전광석화처럼 어떤 결단을 어떻게 내렸는가? 트루먼은 “우리는 그 ×자식들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분노의 힘! 그러나 언론과 여론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난리친다. 트루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트루먼은 1953년 스스로 재선을 포기하고 백악관을 떠난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에 반대하는 여론의 후폭풍 때문에. 그의 일기장, “그 (결단의) 순간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건 여론이나 대중의 의견이 아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과 리더십이 판단하는 것이다. 불굴의 용기와 정직, 그리고 옳은 일에 대한 신념이 있는 자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다.” MB, 이제라도 역사만을 바라보며 결기로 밀어붙여라!

더 중요한 건 박근혜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MB를 도와 한·미 FTA가 통과되도록 해야 하는 것! 박근혜, 들고 일어서라! 통곡하듯 국민을 설득하고, 야당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고, MB는 이미 흘러간 물로 보고 박근혜 눈치만 살피는 한나라당을 대동단결해 통과시켜라! 한·미 FTA가 처리되지 못하면 한·미 동맹은 결국 파산의 길로 간다. 국익을 향해 몸 던지는 기개! 그게 원래 박근혜의 브랜드 아니었나?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22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은 박근혜는 9월16일 일기장에 단 한줄로 자신의 심경을 적는다. “책임.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 다음 대통령의 첫 조건(條件)은 국가에 대한 책임감! 그걸 갖추고 있는지 지켜보겠다. 시대의 악역(惡役)을 자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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