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만 한다고 지구촌 빈곤이 해결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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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덫 걷어차기 / 딘 칼런·제이콥 아펠 지음, 신현규 옮김 / 청림

‘빈곤’이란 무엇인가. 유엔의 정의에 따르면 ‘빈곤이란 기회와 선택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빈곤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일”이며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지구상 70억 인구 중에서 빈곤 인구는 얼마나 될까. 거의 절반 가까이 되는 30억 명이 하루 2.5달러의 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3000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먹고 입고 자고 움직이는 비용을 모두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없을까. 이와 관련,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전 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진국의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윌리엄 이스털리 뉴욕대 교수는 “지난 반 세기 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왔지만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빈곤 문제에 대한 이 두 가지 학술적 논쟁에 휩쓸리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난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그에 맞는 해법들을 찾아본 다음, 과연 그 해법들이 적절한지 검증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돈을 기부하는 것이 매우 신성한 일이라며 치켜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일이라며 비관적으로 몰아치지도 않는다. 저자들은 두 가지 주장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명확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행동경제학’ 이론을 도입, 세계적인 부의 불균형을 어떻게 극복하고 빈곤을 퇴치할 것인가에 대해 제3의 길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빈곤국 사람들은 최선책을 사용하기가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차선책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대출)를 받으면 대출 상환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리의 이자를 물더라도 시장의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려 쓴다. 이들은 비제도권의 조합에 가입하면 돈이 아니라 사업상 판매하는 물건들도 받아주기 때문에 이자를 전혀 받지 못해도 은행에 가지 않고 이를 이용해 저축한다. 또한 이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수업료를 현금이 아니라 할부로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이를 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학교에 보낸다. 그리고 병원처럼 일주일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들은 다리를 다쳐도 약초의를 찾아간다.”

결국 우리들은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과는 거리가 있다. 빈곤층 사람들은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반복함으로써 자신들을 더 가난하고 불쌍한 처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실수들이 무엇 때문에 야기되는지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어떤 빈곤 퇴치 활동이 효과적인지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빈곤 퇴치를 위한 구호기구들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빈곤 퇴치를 위해 돈을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기부한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점검해 보고, 1달러를 기부하더라도 빈곤 퇴치 활동을 효과적으로 펼치고 있는 기관에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