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화가’ 이번엔 ‘바람’ 담았네

캔버스에 붓과 물감으로 그리기 자체에 몰두해온 김지원(50)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별칭이 ‘맨드라미 화가’다. 각종 전시를 통해 기하학적 문양의 축대, 바다 위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항공모함도 그렸지만 그의 작품 중 검붉은 맨드라미꽃 시리즈가 유독 미술가 안팎의 호응을 얻으면서 맨드라미 그림이 대표작처럼 각인돼 왔기 때문이다. 올들어 서울 금호미술관, 부산 조현갤러리서 열린 개인전도 주역은 맨드라미 그림이었다.

맨드라미 화가가 연말연시 개인전을 통해 이전 전시와 달리 ‘낯선 풍경화’를 발표한다. 김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건물 지하 하이트컬렉션에서 12월9일 막을 올리는 ‘바람처럼’전(내년 2월17일까지)을 통해 청색 바다 그림을 선보인다. 전시작은 항공모함 시리즈의 배경이었으며, 친근한 탓인지 전시장에선 찾아보기 힘든 바다풍경에 집중한 작품들이다.

그는 수년간 도시와 일터,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울릉도, 진도, 홍도, 석모도, 백령도, 그리고 에게해의 그리스령 섬 등지서 여행하며 접했던 바다를 캔버스에 옮겼다. 인도 수타니파타경전 중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을 인용하며 그는 바다의 물빛과 흰 물거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보이지 않지만 볼을 스쳐지나간 바람의 느낌 온도 냄새까지 화폭에 담고 싶다”는 그의 그림에선 짙푸른 바다가 흰 물거품을 드러내면서 일렁이고 물결치며 다양한 물빛의 파노라마 속에 정중동(靜中動)의 이미지를 펼친다.

시간과 노력의 산물인 잘 그린 그림보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그림’(서정적이든 흉측하든 보는 이의 뇌리에 남는 그림)을 추구해온 작가. 그는 인상적인 바다 그림으로 지난 겨울 프랑크푸르트 쿤스트할레에서 접한 쿠르베의 바다 그림,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시공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지목하며, 그 묘한 감동의 연장선상에서 ‘김지원의 바다’를 공개한다. 물빛이 농담을 달리하며 변화하는 바다풍경을 통해 화가는 철 지난 바다에서 느꼈던 기이한 환영, 뜻밖의 만남과 생소한 맛 같은 여행의 추억까지 담아낸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