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음모론 확산 ‘무대책’ 손놓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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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등 야당들의 반발 속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표결 강행 처리된 것을 계기로 사회 갈등이 증폭되면서 각종 음모론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출처도, 근거도 없는 음모론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여론 왜곡이나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SNS 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실무적으로는 민간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담당하게 되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국가정보원·경찰청 등으로 나뉘어 소관 부처가 어디인지조차 불분명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SNS 소통이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음모론이 판칠 경우 이전보다 더 심각한 여론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1월22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 후 등장한 대표적인 음모론은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 폭행사건 자작극설’이다. 11월27일 한미 FTA 반대집회 도중 박 서장이 일부 시위대에 의해 얼굴 등을 폭행당했지만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SNS에는 “종로경찰서장 기자회견 장소에 모 의원이 참석했는데 얼굴이 멀쩡했다고 한다”는 글이 확산됐다.

일부 인터넷 언론과 야당 의원들까지 나서 “박 서장이 시위대에 맞았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11월29일 국내에서 첫 의인성(醫因性)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번엔 이를 미국산 쇠고기와 연관시키는 글들이 쏟아졌다. 심지어 5일에는 한 여성 방송인이 연루된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자 이것이 한나라당 의원 비서 공모씨의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테러 의혹을 덮기 위한 술수라는 음모론마저 퍼지고 있다.

음모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북한에 의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한국 정부의 자작극설, 미군 오폭설 등 음모론이 난무했다.

특히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각종 음모론이 확산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나꼼수에선 11월11일부터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선관위 내부 소행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지난 4월에는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소송 보도가 나오자 “BBK사건 손해배상 판결 기사를 덮기 위한 초대형 떡밥”이라는 음모론이 나왔다. 8월에는 “오세훈(전 서울시장) 사퇴하는 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부정의혹)사건 발표되면서 놀아났다. 그 뒤에 가카(대통령)가 계신다”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택수(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음모론을) 유포하고 옮기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평중(철학) 한신대 교수는 “SNS 통제는 시대착오적이고 가능하지도 않다”면서 “각종 괴담과 음모론을 스스로 자정하기 위한 시민들의 성찰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남석·조해동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