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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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배반 / 존 캐서디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원저의 제목은 ‘어떻게 시장은 실패했는가(How Markets Fail)’이다. ‘시장의 배반’이 아니라 ‘시장의 실패’라는 것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라고. 이게 무슨 말인가. 지난 30여 년간 세계 주류 경제학계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시장’에 대해 실패했다고 말하다니, 무슨 경거망동인가 말이다.

하지만 이미 선진국의 경제학계는 ‘시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단지 그 여파가 아직 한국에까지 미치지 않았을 뿐이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을 따름이다. 저자는 나아가 ‘시장 만능주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한다. 그 같은 개념은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 50여 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경제학 사조의 변화과정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를 주름잡았던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는 파산했으며,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에서 훨씬 다양하고 폭넓은 경제학의 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점력을 악용하는 대기업의 반경쟁적 행위, 보험이 가장 절실한 환자들에게 보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의료보험, 금융시장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투기 버블. 이 모든 것이 바로 시장이 실패한 사례에 속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혁신, 이윤창출,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즉 주식시장 버블, 부의 불평등, 환경오염, 신용 경색, 부동산 시장 붕괴 등이 일어날 때 시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바꾸어 놓는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파국에 이른 것은 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착각에서 비롯됐다. 규제 없는 금융시장이 고삐 풀린 도박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들은 왜 그토록 ‘시장의 자정 능력’을 맹신했을까. 경제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채 탁상공론의 덫에 빠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개인의 합리적인 행동이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할 때 모두가 협력해 공익을 이룬다는 기본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하이에크에서 밀턴 프리드먼까지 시카고 학파가 탄생시킨 유토피아 경제학의 환상을 깨고, 케인스와 아서 피구에서 조지 애컬로프와 대니얼 카너먼에 이르기까지 ‘현실에 기반을 둔’ 경제학의 흐름을 추적한다. 저자는 경제학의 변천과 왜곡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면서 오늘날 미국과 세계 경제가 왜 비틀거리고 있는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