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잡고 말 치료하던, 조선의 하급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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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9급관원들, 하찮으나 존엄한 / 김인호 지음 / 너머북스

호랑이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겨졌지만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1년인 1392년부터 철종 14년인 1863년까지 무려 937차례 호랑이가 출몰했으며 피해를 본 사람은 3989명에 달했다. 이 수치는 정확하게 숫자를 셀 수 있는 경우에만 합산한 것이고, 기록에 올리지 않거나 모호한 숫자로 말해진 것까지 감안하면 호랑이의 피해는 이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경우 지금의 교통사고 사망자보다도 호환(虎患)을 입는 백성들이 많았던 시절인 것이다. 이같은 호랑이 피해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전문으로 잡는 사람들을 따로 뽑았다. 바로 착호갑사(捉虎甲士)라고 불린 직업 군인들이었다. 착호갑사가 되려면 무예실력 이상의 담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직업인 만큼 착호갑사는 출세의 기회가 주어졌던 전문직이었다.

김인호 광운대 초빙교수가 쓴 이 책은 착호갑사를 비롯해 관청과 궁궐에서 일했던 하급 관원들의 세계를 집중 조명했다. 풍속 위반자를 단속하는 소유(所由), 관리의 앞길을 인도하는 구사(丘史), 교통수단이었던 말을 치료하는 마의(馬醫), 계산 등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산원(算員), 시간을 알려 주는 금루관(禁漏官), 통역의 임무를 담당하는 통사(通事)….

저자는 이처럼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손과 발’ 같은 존재였지만 그동안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이들의 삶을 조선왕조실록 등의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저자는 “이들은 양반과 백성 사이에서 천시당하기도 했고, 때로는 권력자와 가깝다는 위치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기도 했지만 모두가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실핏줄 같은 존재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관원은 아니었지만, 나랏일을 했던 ‘조선의 비정규직 공무원’들도 소개한다. 시체를 검시하는 오작인(伍作人), 사형을 집행하는 회자수(會子手), 세금 운반선인 조운선을 운행하는 조졸(漕卒) 등이 바로 그들이다. 책엔 이밖에 여진과 일본과의 전쟁에서 상대의 고급 정보를 빼내오는 간첩(間諜), 교통수단인 말을 기르는 목자(牧子), 소금을 만드는 염간(鹽干),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소 잡는 전문꾼 거골장(去骨匠) 등도 등장한다.

‘영의정’‘좌의정’ 등 최고 권력층의 호칭에 익숙한 독자에게 조선시대의 ‘하찮지만, 존엄한’ 이들의 세계를 보여준 이 책은 조선 관료제의 단면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조선의 왕실과 양반 사회를 다룬 책은 숱하지만 이처럼 일반인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하급 관원들의 세계와 ‘조선의 비정규직 공무원’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룬 책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