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준우승’ 서능욱 9단 ‘40년 盤上의 한’ 풀었다

  • 문화일보
  • 입력 2011-12-2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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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한번 우승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했었는데 오죽하겠어요.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기쁩니다.”

40년 프로기사로 활약하며 준우승만 13번 기록했던 서능욱(53·사진) 9단.(문화일보 11월18일자 36면 ‘오랜만입니다’ 참조)

마침내 그가 생애 첫 우승을 일궈냈다. 그것도 13번의 타이틀전 결승 중 무려 12차례나 발목을 잡은 ‘황제’ 조훈현(58)을 상대로 우승해 기쁨이 더 컸다. 서 9단은 27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기 대주(大舟)배 시니어 최강자전 결승에서 전기 챔피언 조훈현 9단에게 175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었다. 평소 대국 직전에도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서 9단은 이날만큼은 달랐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긴장이 역력해 오히려 웃길(?) 정도였다. 그는 대국 전에 “그동안 끊임없이 정상을 노렸지만 전부 실패했어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조 9단은 여전히 강하지만 그동안 나도 많이 늘었어요”라며 각오를 다졌다.

초반 실리는 조 9단이 챙기며 바둑이 어렵게 풀려갔다. 하지만 서 9단은 대세력 작전을 펼치다 마침내 중반에 상대의 중앙 대마를 잡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서 9단은 “문화일보에 제 얘기가 크게 나간 뒤에 기(氣)를 받아 우승한 것 같다”며 “평생 앞길을 막아섰던 조 9단을 이겨 만감이 교차한다”고 감격했다.

1972년 입단한 서 9단은 조훈현-서봉수 양강체제를 깰 수 있는 ‘도전 5강’ 중 선두주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번번이 우승문턱에서 좌절했다. ‘서능욱이 우승을 한번도 못한 것은 바둑계의 불가사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쾌활한 성격이지만 왜 마음고생이 없었겠나.

“한번은 정말 우승까지 딱 한 발짝 남았는데 역전패를 당했어요. 혼자 집으로 돌아오다가 죽고 싶었던지, 무작정 차도로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지나던 택시 기사가 ‘야, 이놈아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고 욕을 하더군요. 허허.”

이번 대회 준결승에서는 서봉수 9단도 꺾어 마침내 ‘도전 5강’의 숙원을 이룬 셈이다. 이날 인터넷 바둑 관련 포털사이트에는 “드디어 ‘조-서’ 시대는 가고 서능욱 시대가 도래했다”는 등 바둑팬들의 축하 댓글 수백개가 이어졌다. 보기 드문 모습으로 서 9단이 팬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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