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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1월 01일(日)
‘홍길동傳’ 써내려간 붓으로 쓴 詩 3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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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있다 / 허균 원작, 이경혜 글, 정정엽 그림/알마

‘마흔하고도 세 해를 글 짓는 데 매달려/ 헛된 마음고생에 천금을 다 털어 부었다/시와 산문 열 권을 막 옮겨 적어 끝냈으니/앞으로 다시는 글을 읊지 않으리라.’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자신의 문집을 엮으며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하며 쓴 시 ‘다시는 시를 읊지 않으리라’다. 명문가의 자제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던 당대 최고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허균은 이 시 이후 거의 시를 쓰지 않았다. 절친한 벗 권필의 죽음 때문이었다. 서얼 출신들의 역적모의에 관련됐다는 혐의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허균은 자신이 철저히 경멸해왔던 당대 권력가 이이첨과 손잡고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의 길을 걷는다. 그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책은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의 시와 삶을 다룬 작가 이경혜가 허균의 시 가운데 그의 사상과 고뇌를 생생하게 드러낸 38편의 시를 뽑아 곱게 다듬었다. 우리 문학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문학 감식안을 가진 인물로 평가 받는 허균의 시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자유무역으로 큰 돈을 버는 데 비해, 허균은 중국을 다녀올 때마다 있는 돈을 다 퍼부어 책을 사가지고 왔고, 심지어 집안 돈을 다 긁어가 몇 수레나 되는 책을 사오기도 했다.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중기 문학을 꽃피운 허균은 한국 문학사에서 여성 문학을 정당하게 대우한 최초의 비평가였다. 잘못된 정치에 희생된 백성을 옹호하는 혁명적인 글을 거침없이 써낸 그는 시대를 한 발 앞서간 개혁적 사고 때문에 지배계급의 미움을 사 역모죄로 능지처참의 극형을 당한 인물이다.

형장으로 끌려가며 “할 말이 있다!”고 외치지만 결국 그 할 말을 못한 채 죽음을 맞는 허균! 부패한 조선 지배층을 향해 고언을 하고 싶었을까? 형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자신의 문집을 사위에게 맡긴 덕분에 그의 시를 통해 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할 말’을 추측할 수 있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m
e-mail 정충신 기자 / 정치부 / 부장 정충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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