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 맞서는 두 제국, 그들만의 ‘은밀한 협력’

중국과 이란 / 존 W 가버 지음, 박민희 옮김 / 알마

미국은 지난 연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에 서명하면서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이란이 생산하는 원유에 대한 금수조치에 착수했다. 이란은 이에 반발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무력시위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원유의 20%가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전 세계로 수송되는 마당에,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세계 경제는 동반 침체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등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200달러 넘게 폭등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될 것인가 아니면 으름장에 그칠 것인가. 미국과 이란이 대치하는 국면에서 중국의 움직임은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조지아공과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저자는 글로벌 정치·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른 중국과 서방에 맞서 핵 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이란의 관계를 역사적 맥락과 국제정치·경제적 측면에서 꼼꼼하게 분석했다.

저자는 먼저 양국의 관계를 지속시켜 주는 기본적인 신념과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관계의 양상을 샤 왕조와 마오쩌둥(毛澤東)의 시기(1971~1978), 호메이니와 덩샤오핑(鄧小平)의 시기(1979~1988), 포스트 냉전의 시기(1989~2004) 등으로 나누어 시기별로 두 나라의 관계를 이끈 국제정치적인 배경과 목적, 전개 양상 등을 살펴본다.

아울러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중국의 전략을 비롯해 중국의 신장(新疆) 지역 무슬림 억압과 이란의 혁명 수출 정책의 충돌, 중국·미국 협력에 따른 중국·이란 관계의 성격 변화 등을 짚어 본다.

책에 따르면 중국과 이란은 크게 ‘신념’과 ‘이해관계’ 두 가지 면에서 강한 협력의 동기를 느꼈다. 두 나라는 모두 과거에 영광스러운 제국이었다. 이란은 페르시아제국, 중국은 중화제국으로서 각자가 그 세력권 안에서 어떠한 도전도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서구 세력의 침탈로 제국은 몰락했고 모욕의 ‘잃어버린 100년’을 통과해야 했다. 이런 공통된 경험을 바탕으로 두 나라는 반헤게모니 신념을 공유했다. 이런 신념은 현재 중국에서는 경제 개발 의지로, 이란에서는 핵 개발 열망으로 나타나고 있다.

협력의 다른 한 축은 ‘이해관계’다. 가령 샤 왕조와 마오쩌둥의 시기에 두 나라는 ‘소련’이라는 헤게모니 국가를 견제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다. 당시 소련은 남아시아를 비롯해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 등지에서 세력을 깊이 확대하고 있었다.

같은 사회주의권이기는 하지만 소련과 결별한 중국은 고립무원의 처지였고, 친미 정권인 샤 왕조는 친소 세력 국가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었다.

위기를 느낀 두 나라는 이때부터 긴밀하게 군사적 협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이란 관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가 이란과 중국 무슬림 사회 간의 관계였다는 점이다. 중국을 포함해 외국 땅에서 압제받는 것으로 보이는 무슬림 형제들의 투쟁을 지지하려는 이란 이슬람혁명주의자들의 욕구는 때때로 중국 공산당의 국내 안보에 대한 우려와 갈등을 일으켰는데, 특히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미국의 파트너인가 라이벌인가. 책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파트너이기도 하고 라이벌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이란에 종전할 것을 촉구했다. 1987~1988년에는 이란에 미국과 군사적 대립을 피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중국이 이란과 협력해 미국의 정책에 반대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많았다. 중국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미국의 ‘억제작전’을 거절하고, 이란의 주요 무기 공급원으로 활약했다. 전후에는 미국의 이중 봉쇄정책을 거부하고 이란과 경제적·기술적 협력을 추구했다. 저자는 “지금까지 중국의 대이란 정책은 철저한 기회주의와 장기적 전력 비전의 결합이었는데, 이를 ‘전략적 기회주의’로 부를 만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중국과 이란은 현대 세계의 불공정한 상황에 대해 많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며 “중국과 이란이 협력하는 방법은 서로의 이익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협력하고자 하는 욕구는 변함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고 진단한다.

김도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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