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꼼수’에 소비자들 깜빡 속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김동훈기자 dhk@munhwa.com 1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이마트 용산점에서 한 직원이 유통시간이 지난 신선 식품을 매대에서 찾아 폐기하고 있다. 이마트는 자체 판매 제한 시간을 정해 판매 시한이 지난 제품은 바로 폐기한다고 밝혔다.

1월31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생선 매장. 싱싱한 생선을 사기 위해 마트 개장과 함께 매장을 찾은 김모(여·36)씨는 생선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여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김씨는 “마트 문을 열 때 진열된 생선이 싱싱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신선도가 떨어졌다”며 “아무래도 어제 팔다 남은 걸 포장만 새로 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냉동 생선 몇마리를 사고 마트를 나왔다.

이모(여·32)씨는 최근 한 마트에서 산 김밥 때문에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이씨는 “저녁 8시쯤 대형마트에서 제조 시간이 오후 6시로 돼 있는 김밥을 사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아이들과 나눠 먹으려고 하는데 쉰 냄새가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재료가 상했더라”며 “만든 지 채 세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상했다는 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2일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식품위생법 등에 따르면 신선·조리식품의 경우 포장에 적시해야 하는 제조일자의 기준이 ‘포장 랩을 씌울 때’다. 판매되는 모든 식품에는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인 유통기한을 표시하도록 의무화돼 있는데 도시락·김밥 등 상하기 쉬운 식품과 설탕·소금 등 오래 보관이 가능한 식품은 유통기한 대신 생산된 ‘제조연월일’을 표시해야 한다.

제조연월일은 포장을 제외한 내용물을 더 이상 제조나 가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점으로 정의돼 있다. 예를 들어 생선의 경우 잡은 시점, 운송 시점, 조리 시점, 포장 시점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수 있으나 최종 단계인 포장 시점을 제조연월일로 규정하도록 돼 있다. 조리식품의 경우에도 원재료 생산 시점, 재료 손질 시점, 최종 요리 시점에 상관없이 포장 시점만 표기하면 된다.

이에 실제 제품 생산 시점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문제와 함께 최종 포장 시점만 공개됨으로써 소비자들이 마치 방금 생산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대형마트들이 임의로 포장 시점을 조절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신선식품은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바로 폐기한다”며 “하루 이틀 둬도 괜찮은 식품의 경우에도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마트로서는 큰 타격이기 때문에 식품 품질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지만 가끔 매장에서 실수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현희(민주통합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주요 대형마트와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SSM)들의 ‘유통기한 표시 위반’ 사례는 66건에 이른다. ‘표시 기준 위반’ 사례도 9건 있었다. 전 의원은 “전체 유통업체 숫자와 비교해 보면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소비자들의 품질 신뢰도가 높은 대형마트에서 유통기한을 속이고 허위 표시를 한다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물건을 사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1월31일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에 서울 시내 대형마트 두 곳을 찾았다. 특히 신선도가 중요한 생선, 정육 매장 진열대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매장 직원은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된 상품은 아직 내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제품의 경우 제품을 내놓은 시간까지 표시할 정도로 신선도를 강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일부 제품의 경우 ‘1월30일’ 제조일이 찍힌 스티커 위에 31일 제조일자가 붙은 스티커가 새로 붙어 있기도 했다. 일부 크기가 큰 생선의 경우 손질을 마치고 남은 부위를 그대로 냉동실에 다시 보관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가와기시 히로카즈의 ‘소비자이기에 용서할 수 없는 마트 신선식품’이라는 책에는 식품 규제에 엄격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대형마트에서 전날 팔다남은 생선회를 포장만 새로 해 내놓은 사례, 전날 식품과 당일 생산 식품을 섞어 판매하는 사례, 팔다 남은 신선식품을 재료로 조리식품을 만드는 사례가 소개돼 있다.

신선식품보다는 조리식품의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조리식품의 경우 요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원재료의 신선도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알 수가 없다. 소비자들은 단지 최종 조리 시점과 포장 시점만 알 수 있을 뿐 원재료의 신선도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따지거나 항의를 하기도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신뢰가 생명인 유통업체들이 일부러 유통기한을 속이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도 “최종 조리 시점을 제조연월일로 표기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제품의 신선도에 대해 착각하게 되는 면은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마트 관계자는 “이마트는 시간 단위로 판매 시한을 정해 이 시한이 넘어가면 바로 폐기한다”며 기자에게 직접 판매 시한이 지난 ‘그러나 겉보기엔 멀쩡한’ 제품을 폐기처분하는 현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안병수 후델식품건강교실연구소장은 “식품 매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시대는 끝났다”며 “좀 더 꼼꼼하게 의심하고 확인하는 ‘마트의 달인’이 늘어날수록 마트의 이면도 더 밝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