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에서 自生한 ‘바람’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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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직관 / 존 L. 캐스티 지음, 이현주 옮김/ 반비존 L. 캐스티 지음, 이현주 옮김/ 반비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미래에 대한 집단의 신념이 존재한다. 집단의 신념, 즉 집단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나중에 그 집단이나 사회가 경험하게 될 사건의 방향을 한쪽으로 몰아간다.”

이 책의 요지다. 좀더 짧게 요약하자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있다면 현재 사회 분위기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위기’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유행이나 트렌드로 부르는 ‘분위기’에 대해 저자는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 또는 사회가 미래에 대해 갖는 느낌”이라고 정의한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한 사회적 사건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저자의 주장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그 반대 방향, 즉 사건이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얼핏 황당하게 들리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저자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누누이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나 9·11 테러가 대중의 심리에 미친 영향은 단기적이고 크지 않았음을 저자는 다양한 수치와 그래프로 입증해 보인다. 케네디 암살 당일 다우존스지수는 3% 정도 떨어졌다가 약간 회복됐다. 하지만 당시 시장이 어차피 하락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주가에 대한 장기적 영향은 미미했다.

다시 말해 사회적 분위기가 사건을 야기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만 사건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향은 단일방향으로만 흐른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대해 ‘사회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로버트 프랙터는 이렇게 요약, 설명하고 있다(사회경제학이란 집단 내 개인들의 생각이나 느낌이 사회적 분위기라는 일종의 ‘광기’ 혹은 ‘직관’으로 집중되는 과정을 복잡성 과학을 통해 설명하려는 학문이다).

“만약 사건이 분위기와 돌고 도는 고리를 형성한다면 사회적 동향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특정 방향으로 극단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때마다 더 강화된 행동이 야기될 것이고, 그러한 행동들은 다시 동일한 분위기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영원히 진행될 것이다. 이는 지지할 수 없는 생각이다.” 즉, 사건이 분위기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심각한 지적 퇴보라는 것이다.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특정 정치 지도자의 행동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믿는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 지도자의 행동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 급기야 그들에 대한 대중의 평가(사회적 분위기)를 바꾼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순서가 정반대다.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특정 정치 지도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과 판단을 바꾸고 그것이 사회적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대세론’으로 지지를 받던 정치인의 인기가 떨어지고, 새롭게 나타나는 정치인의 지지도가 갑자기 올라가는 경우에도 이러한 분석을 적용해볼 수 있다. 저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등 특정 정치인에 대한 ‘민심’의 변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또 마이클 조던 같은 스포츠 스타의 활약과 당시 분위기를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분위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책에 따르면 인간의 ‘무리짓는 본능’과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이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분위기는 일종의 시대정신(Zeitgeist)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분위기가 외부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듯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개인들은 훨씬 더 강력한 전염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개인들은 덜 강력한 전염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마치 야생 동물들이 자연 재해를 미리 예감하고 대비하듯 대중은 그 사회에 닥칠 미래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정확한 예감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사회경제학은 분위기를 계량화해서 보여주는 지표로 주가를 이용한다. 하지만 열역학 책이 ‘온도계’에 관한 책이 아니듯 주가변동 지수를 활용한다고 해서 주가 예측에 관한 책은 아니다. 대중의 집단적 심리를 측정해 보여줄 수 있는 도구들은 주가 외에도 다양하다. 최근 중요한 여론 제조기로 떠오른 소셜네트워크 분석뿐 아니라 심리학 분야에서 주로 활용되는 심층면접을 통한 설문조사, 또 연간 출생아 수 통계 등도 ‘분위기 측정기’로 활용할 수 있다.

저자가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는 사회경제학의 가장 큰 의의 중 하나는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지배적인 분위기가 역사를 만든다’는 발상의 혁명성이다. 이는 오랫동안 상식으로 굳어져 온, ‘외부의 힘(사건)에 의해 내부 변화가 일어난다’는 관념을 타파하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예측 한 가지. ‘어떤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거라며 첫 삽을 뜨는 순간 최대한 빨리 그 나라 주식 시장에서 빠져나올 때가 된 것이다.’ 그 근거가 궁금하신 독자는 책을 펼쳐보시길.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