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커뮤니케이션 기술, 속임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속임수’. 중앙에 눈굴리는 아주머니, 왼쪽 아저씨는 음흉한 표정으로 에이스카드 두 장을 손에 쥐고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17세기 타짜’를 보는 듯하다.

속임수에 대한 거의 모든것 / 산타페연구소 속임수연구회 지음, 브룩 해링턴 엮음, 고기탁 옮김 / 황소걸음

속임수에 의해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이른바 ‘속임수의 시스템’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 책은 미국 뉴멕시코 소재 산타페연구소 속임수연구회가 영구불변의 매력적인 주제인 속임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연구·발표한 논문을 엮은 속임수 실태보고서다.

196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머레이 겔만이 설립한 산타페 연구소는 ‘복잡계’ 연구로 유명하다. 책에서는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진화생물학자, 컴퓨터 공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생태계부터 디지털 세상까지 세상사 곳곳에 도사린 속임수의 작동 원리를 분석해 시종 눈길을 사로잡는다.

최근에 실시된 한 심리연구 조사에서 10분간 대화하는 동안 피시험자 중 60% 이상이 최소한 한 번씩 거짓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시간 평균적으로 2∼3회 거짓말을 했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의 친밀도가 높아질수록 속임수는 줄어든다고 알려져있지만 이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연인이나 어머니와 대화할 때 3분의 1에서 2분의 1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일부 언어학자들이 속임수는 인류의 언어가 발달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고 주장할 정도로 속임수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형태 중 하나임이 입증되고 있다. 인간에게 거짓말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이례적으로 나타나는 변종이 아니라 인간의 전형적인 행동 양식에 가깝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의사들에게 “첫째, 해가 될 행동을 삼가라”고 한 금언 역시 속임수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 진료과정에서 처방되는 플라세보효과부터 위독한 질병을 앓는 나약해진 환자에게 고통이나 악영향을 유발할 수 있는 진술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행동까지 속임수는 의학분야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자연과학자들은 진화적 적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속임수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동물들의 짝짓기를 위해 자신의 매력을 강조하거나 포식자의 눈에 덜 띄도록 시인성(視認性)을 낮추는 행위도 그런 속임수 가운데 하나다. 속임수는 인간사회나 동물사회에서 짝짓기 혹은 생존 문제와 외견상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것은 속임수가 일상생활에서 왜 그토록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설명해준다.

인간관계에 만연한 속임수는 다른 경우라면 비난받아 마땅한 공인된 속임수 사례들이 인간사회에 왜 그토록 넘쳐나는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예컨대 스포츠 경기나 공연 예술에서 속임수는 감상과 존경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야구에서 타자를 속이기 위해 사용하는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 싱커 같은 변화구가 대표적 사례다.

가장 일반적인 속임수 형태의 두 가지 발로인 거짓말과 둘러대기의 차이점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이 허구와 관련된 행위라면, 둘러대기는 날조와 비틀기, 왜곡, 과장, 선택적 보고 등의 수단을 동원해서 진실을 조작하는 행위다. 책은 속임수 거짓말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는 게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속임수는 복잡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현상이며 속임수에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줘 흥미롭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