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영조 죽이려다 죽임 당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스물한 살 때 그려진 박동보의 ‘연잉군 초상’. 문학동네 제공

권력과 인간 /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왜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을까, 그것도 뒤주에 가둬서.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비운의 스토리에 항시 등장하는 의문이다. 학계에선 그동안 사도세자가 미쳐서 영조가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광증설’과 사도세자가 우수한 자질을 가졌지만 집권층인 노론 세력에 맞서다 억울하게 죽었다는 ‘당쟁희생설’이 제기되긴 했다. 하지만 두 가설 모두 확고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저자인 정병설(국문학) 서울대 교수는 여기에 흥미로운 가설을 하나 추가했다.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반역설’이 그것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가장 상세히 설명한 자료는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1737~1815)가 쓴 회고록 ‘한중록’이다.

한중록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룬 대목은 순조 때 쓴 것으로, 임금의 할머니가 썼기에 다른 사람은 감히 쓸 수 없는 말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한중록을 꼼꼼히 읽으면 세자의 반역이 보인다”며 “물론 다른 사료들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지만 관련 사료가 워낙 완곡하게 서술돼 있어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반역을 명확하게 읽어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 교수는 이 책에서 사도세자가 미쳐서 영조를 공격하려다가 반역죄에 걸렸다는 한중록의 설명을 따르면서, 아울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이재난고’ ‘현고기’ ‘대천록’ 등 역사서와 개인 문집 등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반역설 주장 근거로 사도세자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성품이 탁월해 임금의 사랑을 받았던 사도세자는 열 살이 넘어서자 학문을 게을리했고, 대리청정을 한 다음부터 병이 생겨서 본성을 잃었다. 1757년과 1758년 이후 병증이 더욱 심해져 병이 발작할 때는 내인과 환관을 죽였고, 죽인 후에 바로 후회하곤 했다. 승정원일기는 사도세자가 밥 먹기를 좋아하고 책은 싫어한 뚱보 아이였다고 묘사한다. 영조는 이런 세자를 신하나 아랫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꾸짖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정 교수는 “최근에는 사도세자의 광증을 보여주는 사료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조가 쓴 ‘폐세자반교’, 사도세자 묘지명, 사도세자가 장인에게 보낸 편지, 정조가 사돈 김조순에게 전한 말 등이 사도세자의 광증을 보여주는 자료로 제시된다.

단순히 미쳤다면 치료를 하거나 보호해 감시하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죽였을까. 정 교수는 “영조가 아들이 미쳤다고 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세자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에 죽였다”는 주장을 폈다. 정 교수는 “뒤주에 가두기 하루이틀 전 밤에 세자가 자신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자기 궁궐로 오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죽였다”면서 “세자는 반역죄로 죽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쉽게 믿기지 않는 반역설에 대한 근거는 무엇일까. 책은 사도세자가 태어날 때부터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후 영조의 반응과 정조의 역사 왜곡, 나아가 순조 대 혜경궁의 한중록 집필까지 근 일세기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는 “사실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자면 사건의 배경과 경과, 나아가 그에 대한 담론의 변화까지 알아야 한다”며 “특히 담론의 변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없고, 이로 인해 결국 엉뚱한 해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했다.

김도연기자 kdychi@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