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이후 신대륙… 침략-저항-부활의 500년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 로널드 라이트 지음, 안병국 옮김 / 이론과 실천

유럽 중심의 역사가들은 신대륙 탐험가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를 홀대해 왔다.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미지의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1492년.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전 세계 인구의 20%인 1억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던 ‘오래된 구세계’였지만, 유럽인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신세계’라 불렀다.

그후 유럽 침략자들은 원주민이 오랜 세월 일궈 온 문화와 문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업신여기며 원주민을 노예 삼아 터줏대감처럼 행세했다. 승자인 백인·유럽인·침략자들이 ‘아메리카인’이 됐고, 피정복민은 ‘인디언’ 혹은 ‘원주민’이라는 이름으로, 승자 위주의 역사만 전해 왔다.

이 책은 1492년 이후 아메리카를 피정복민의 시각에서 재조명한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명과 역사를 연구해 온 영국인 저자는 식민지배를 받았던 원주민 자료들을 찾아내 유럽 위주에서 벗어난 역사 읽기를 시도한다. ‘빼앗긴 대륙’ 이야기는 멕시코의 아스테카와 유카탄 반도의 마야, 페루의 잉카, 미국 남부 체로키, 미국-캐나다 사이 오대호 일대의 이로쿼이 등 5개 문화권에 초점이 맞춰진다.

저자는 500여년에 걸친 아메리카의 수난사를 침략, 저항, 부활 등의 시기별로 나눠 정리한다. 정복당한 원주민들이 결코 고분고분한 백인의 노예가 아니었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현재 진행형인 그들의 수난사-투쟁사를 주목한다. 안데스 지방에는 지금도 잉카어를 사용하는 원주민이 1200만명에 이르고,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마야어를 쓰는 원주민이 60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에도, 북극 툰드라 지역부터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안데스 산맥을 거쳐 남아메리카 남단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수렵유목사회뿐 아니라 농경정착사회, 도시문명사회 등에서 다양하게 특유의 언어 종교 예술 과학을 꽃피웠다.

그러나 콜럼버스 출현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몰살당했다. 유럽 정복군의 무력에, 그리고 정복자들을 따라 들어온 전염병의 위력에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저자는 아메리카 대륙을 결정적으로 강타한 것은 천연두, 홍역, 페스트,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었다고 지적한다. 백인들이 ‘토착문화가 미개해서 원주민이 파멸했다’는 식으로 유럽 우월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왜곡하지만 무기와 권력보다 전염병이 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는 것.

정복군을 따라 전파된 전염병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100년여 동안 극성을 부리면서 원주민 인구는 1억명의 10% 선에 불과한 10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침략 초기 신대륙의 도시와 마을을 습격해 황금, 재산을 약탈하고 원주민의 목숨을 위협한 정복자들은 구대륙으로 돌아가지 않고 원주민을 노예 삼아 새 도시를 건설했다. 500여년간 원주민들의 독립투쟁은 끊이지 않았다. 멕시코에선 최초의 인디언 대통령으로 베니토 후아레스가 1861~1872년에 재임했다. 1972년 캐나다에선 이로쿼이 모호크족이 영토를 빼앗으려는 캐나다 정부에 저항해 투쟁했다.

저자는 1492년 콜럼버스의 서인도 제도 상륙 이후 2010년까지 5개 문화권별로 주요 사건을 연표로 기록해 보여준다. 연표에는 1519년 스페인 코르테스원정대의 유카탄 반도 도착, 1520~1521년 마야의 천연두 창궐을 비롯, 2001년 페루 최초의 원주민 혼혈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 취임 등 원주민 중심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