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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3월 20일(火)
출구도 안보이는 ‘밑바닥 인생’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는 많다
소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펴낸 전민식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상처 입은 존재들의 치유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소설가 전민식(47)의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은행나무 펴냄)다.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소설은 현실에서 패배한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는가를 잔잔한 어조로 그려보인다.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소설은, 지리멸렬한 삶과 일상 속에서도 누구나 살아갈 만한 이유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소설은 한순간의 실수로 잘나가는 컨설턴트에서 직업을 잃고 추락한 주인공 ‘임도랑’이 고급 애완견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내용이다.

임도랑은 산업스파이였던 여자 친구에게 자료를 유출시키는 바람에 회사에서 해고된 후 ‘개보다 못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일당 2만5000원짜리 불판닦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누군가의 거짓 삶을 완성시켜 주는 역할 대행 일을 한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개, 강남의 고급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는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아르바이트비는 대기업 연봉과 맞먹는다. 게다가 개의 여주인은 남몰래 그를 응시하고 있다. 만약 그녀와 이어질 수만 있다면….

이렇듯 소설은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헛된 욕망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욕망의 모래성 반대쪽 그늘에는 생의 폭력을 묵묵히 견뎌 내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풍경을 담아냄으로써 우리가 삶에서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할머니와 동생을 부양하며 식당과 술집, 캐셔 일을 전전하는 ‘미향’은 뭇 남성들에게서 유혹을 받지만 끝내 사랑만은 팔지 않는다. 아내와 두 자녀를 모두 잃은 ‘삼손’은 모든 차원이 연결되어 있다는 4차원적 믿음으로 자살방지클럽을 운영한다. 가짜 가족을 만들어 이상적인 결혼을 꿈꾸었던 ‘은주’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인도로 도망친 임도랑의 작은형은 홀로 사하라 사막 도보 횡단에 도전한다.

이처럼 소설은 도시의 마천루 그늘에 가려진 밑바닥 삶의 풍경을 그려낸다. 출구 없는 날들, 어디까지 추락할지 모를 그런 나날들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은 생겨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전씨는 “이 소설은 1%가 아닌 99%에 대한 이야기”라며 “99% 사람의 삶이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가, 돌파구는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씨는 또 “신춘문예 응모는 말할 것도 없고 장편소설 공모만 아홉 번에 걸쳐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열 번 만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면서 “그동안 온갖 대필 작업을 다해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으며, 에피소드 역시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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