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산책>“무작정 기업 때려 해외이전 고려할 정도면 나라 미래 걱정해야”

  • 문화일보
  • 입력 2012-03-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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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의 한경연 집무실에서 비생산적 논쟁을 줄이는 시간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모래시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문제는 경제다.’

한국경제호에 예측하기 힘든 높새바람이 불고 있는 ‘정치의 계절’에 최병일(54)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원장을 만난 것은 복잡한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해 후련한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27일 오후 한경연이 입주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의 한 빌딩 통유리를 통해 눈에 들어오는 첨단 금융빌딩과 여의도공원 풍경에 빠져있을 때, 최 원장이 접견실로 들어섰다.

그는 책장에 놓인 모래시계를 옆 테이블에 올려놨다. 최 원장은 “이게 딱 30분짜리인데, 대학에 재직할 때 이것을 놓고 회의하다 모래가 다 떨어지면 바로 일어섰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는 모래시계를 3차례 뒤집을 정도의 시간에 이뤄졌다.

모래시계 활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말의 성찬으로만 끝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타입이다. 최 원장은 “말보다 행동을 더 좋아한다. 남들은 힘드니까 쉬라고 하는데 나는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더 피곤해지고 뭔가를 할 때가 더 좋다”는 ‘행동 활력론’을 폈다.


“제가 취임한 뒤 약속한 것 중 하나가 올해 양대 선거 공약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한경연 차원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죠. 모든 공약 검증은 어렵고 경제정책에 포커스를 맞춰서 한경연 원내와 외부 전문가를 모아 점수를 매기고 근거를 제시할 것입니다. 이달말 공표할 예정입니다. 올해 대선이 있기 때문에 차기 정부가 들어선 뒤에 필요한 청사진도 만들고 있습니다.”

최 원장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경연이 사회적 교량역할을 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그 뜻을 물어봤다.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잘나가는 사람들과 소외계층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에 기여하겠다는 것입니다. 양측의 진영논리를 극복하면서 상식적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하는데 한경연이 할 일이 많습니다. 얼마 전 스웨덴 발렌베리가(家) 기업의 경영진들이 한국에 왔을 때 강연을 했는데, 그 사람들은 첫째 한국이 자원 없이 짧은 기간에 이렇게 성장한 것을 궁금해하고, 둘째로는 한국에서 많은 글로벌 기업이 나왔는데 정작 한국 내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를 궁금하게 여기더군요. 해외에선 엄청나게 성공을 거뒀는데, 국내에서의 평가가 인색한 괴리에 대해서는 대기업 스스로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그는 “대기업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일탈행위가 있었다면 스스로 자성을 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이 좀 더 창조적인 사회적 책임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다리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교육의 기회를 어릴 때 확보하지 못하면 신분상승 기회가 사라진다”며 “그런 청소년 인재를 찾아서 꾸준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대한 그의 경고는 날카로웠다.

“우리 사회 발달단계로 볼 때 복지 논쟁을 할 시기는 분명히 됐지만 재원확보 없는 무분별한 복지는 남유럽 위기 촉발에서 보듯 경제활력을 갉아먹고 다음 세대에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최 원장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뒤 정당별로 추가 재원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 등 이번 총선 경제공약 중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순환출자 금지는 국내에서 아주 오랫동안 토론하고 다양한 실험도 해왔지요. 정치인들은 지금 이런 고민을 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이며 어떤 제도가 만들어지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만들어 놓는다는 점을 정치가들이 알아야 합니다. 기업들은 출총제가 폐지된 뒤 그 상태에서 기업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편제를 해놓았는데, 이를 다시 도입한다는 것은 기업 활동에 엄청난 제약을 주는 겁니다. 그 비용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는 지금 아무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최 원장은 “우리 경제가 대기업이 수출하고 관련기업들이 활동해 그나마 이 정도 성장하는 것인데 그것을 막으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완화에 대한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은 출총제 부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의 목소리 톤은 나직했지만 한국 경영환경에 대한 분석과 쟁점 정리가 딱 부러질 정도로 명확했다. 그는 “국내에서 기업들을 막 때려서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옮기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환출자도 오랜 논란을 거쳐 인증해준 제도입니다. 기업들은 순환출자를 이용해 가장 유리한 계열 구도를 만들어놨어요. 이것을 단 몇년 만에 완전히 해소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순환출자 금지는 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는다는 것인데 우리 연구원 조사 결과 재벌이라는 구조가 우리뿐 아니라 선진국, 후진국에서도 발견됩니다. 지난 몇년간 국내 기업의 출총제 폐지 뒤 현황을 살펴보니 대부분 핵심역량과 관련된 계열사가 더 많이 늘었습니다.”

코닥과 후지의 예를 들었다. 그는 “코닥은 필름만 고집하다 파산했고 후지는 살아남았다”며 “후지는 많은 이들이 비난하는 문어발 확장을 해서 위기 때 리스크를 해소했는데, 여기에 대한 정확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예로 ‘포천500’에 포함되는 기업 숫자를 제시했다.

“지난 50년간 ‘포천 500’에 들어간 기업 면면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가를 보면 계열화해서 리스크를 분산한 기업은 살아남았는데, 그러지 못한 기업은 그야말로 풍랑에 몸을 맡긴 격이에요. 기업이 리스크 헤징을 못해 망하면 대량실업이 발생하는데, 이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 원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통상전문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대해 “위기가 없으면 도전도 없고, 그러면 성장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당장 수출이 확 늘지는 않지만 한미 FTA를 통해 조금이라도 다른 나라보다 우위를 누리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지금 우리 성장률이 3%로 떨어진 상황이고 0.1%포인트의 추가 성장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한미 FTA의 진정한 가치는 일자리 창출에 있습니다.”

여자대학(이화여대)에 오래 재직했기 때문에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까’라고 짚어봤는데 역시 생생한 현장감각이 돋보이는 답변이 나왔다. 그는 고령화사회 진입의 국제비교표를 책상 서랍 속에서 꺼내 보여줬다.

“한국은 오는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26년이 걸리는 셈인데 그 기간을 비교하면 프랑스는 154년, 미국 94년, 독일 77년입니다. 문제는 고령화사회가 되면 인력난 때문에 현재의 중화학공업 중심 구조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서비스 빅뱅을 해야 한다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최 원장은 “더 이상 외국에 기댈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분출하는 서비스분야 투자 욕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서비스 산업 육성에 대한 국내 리더들의 비전은 미흡했고 규제와 공공성의 논리로 철옹성을 쌓은 기득권의 저항을 돌파하려는 의지와 전략 역시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선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면서 말을 이어갔다.

“판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 일자리의 65%가 서비스업에서 만들어지는데 지금은 영세합니다. 중국의 춘제(春節) 때 엄청난 중국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관광과 쇼핑, 성형수술도 할 수 있는 서비스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한국에 오면 호텔시설이 불편하고 먹거리가 불편하다면 두 번 다시 안 찾습니다.”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선행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 최 원장의 지론이다.

“외국기업들은 안 합니다. 한국 대기업이 해야 하는데 묶어놔서 못하는 게 많지요. 대기업에 왜 의료산업에 진출하느냐고 막는 것은 우리의 미래 가능성과 일자리를 발로 차는 것과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1∼2년 비즈니스 프렌들리 하겠다더니 거꾸로 가고 있고 슈퍼에서 일반약 파는 것도 못하고 있어요. 그것도 못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서 서비스 선진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면 역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대 선거에서는 어느 당이 더 많은 일자리를 국민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총선 때보다는 대선 때 본격적인 정책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원장은 고답적 관행과 자신의 몫 지키기에 매여서 서비스빅뱅을 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암울한 미래로 걸어들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는 서비스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방향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한국경제의 미래 담론을 제시하겠다”는 최 원장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인터뷰 = 예진수 부장대우(경제산업부)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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