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희망 - 2012 대한민국 리포트>“팔도 못가누던 아이들 기적의 무대… 이보다 아름다운 춤 봤나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무용가이자 장애인체육지도자인 임인선 교수가 장애인무용단 활동을 돕는 제자들에게 무용교육의 노하우를 지도하고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무대에서 차이콥스키 발레 ‘호두까기인형’ 중 ‘꽃의 발레’ 그리고 궁중무용을 재구성한 ‘진풍정’의 춤사위를 펼치는 무용수들의 동작과 표정은 진중하고 또 정교하다. 고운 무용복 차림으로 따로 또 같이 발레와 한국무용부터 경쾌한 율동의 현대무용인 ‘새들의 노래’를 춤추는 무용수들의 얼굴 위로 땀과 더불어 감동의 미소가 번진다. 무용을 통해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고, 예술과 일상, 장애와 비장애인이 교감하는 자리다. 연중 6∼7회의 무용발표회를 펼치는 필로스무용단은 지적장애어린이와 청소년으로 이뤄진 장애인무용단이다. 2007년 3월21일 창단 후 올해로 5년째, 정기공연, 찾아가는 공연 등을 통해 발표무대를 가져왔다.

“무용이 몸매와 얼굴이 예쁜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잖아요. 장애어린이·청소년도 무용가가 될 수 있어요. 신체를 통해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미래의 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애인에게 무용을 권장합니다.”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을 이끄는 임인선(49·사회체육학) 대림대 교수는 “5년간 정기적으로 연습하고 30여회의 발표무대를 펼쳐온 전문무용단”이라고 했다. 임 교수는 “그저 취미수준이 아니다”며 “어디서든 공연 요청이 오면 당장 무대에 서서 1시간 남짓 무대를 꾸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소 서툴지만 혼신을 다한 이 아이들의 몸짓처럼 아름다운 무용은 없을 겁니다.”

그는 제자이자 단원들이 처음 무대에 오르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팔을 들기조차 어렵던 아이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가르쳤던 무용강사와 부모님들이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세계적인 무용수의 춤사위와는 또 다른 감동이 관객에게도 전해졌는지, 관객들도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보내더군요. 저도 30년 이상 무용을 해왔지만 그렇게 예쁘고 감동적인 춤사위는 처음이었어요.”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은 2007년 3월21일 창단됐고, 올해로 5주년을 맞았다.

임 교수는 “아이들, 학부모와 어울려 함께 울고 웃는 가운데 어느새 5년이 흘렀다”며 5주년을 맞은 벅찬 감회를 털어놓았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가 장애아동 무용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 서울대 장애아동체육교실에서 무용치료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학원 시절 정신분열증 환자 대상 무용 교육을 연구하며 무용을 통한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원봉사자로 장애아동에게 무용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무용교육의 대상에 눈을 뜨게 됐다. 이후 성균관대에서 다운증후군 아동에 대한 무용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신은 못한다고 여겼던 춤을 배우고 또 무대에 오르면서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됩니다.”

2004년 대림대 교수가 된 뒤로 장애아동 대상의 무용교육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경기 안양 지역 지체장애 및 발달장애 다운증후군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애아동 무용체육교실을 개설했다. 음악에 맞춰 무용동작을 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고 자폐 발달장애 증세가 완화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당시 졸업작품 발표회 25분 길이의 강강술래 공연 후 학부모들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무용체육교실에서 자녀의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체험한 학부모의 제안을 계기로 무용단까지 발족했다. “1년 수료에 그치지 않고 계속 무용을 하고 싶다”는 장애아동들을 위해 2007년 3월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을 창단했다.

당시 장애인무용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지원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일종의 오디션을 거치고 3대1의 경쟁률을 통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20명의 창단멤버가 구성됐다.

“다운증후군, 자폐 등 지적장애 때문에 일부 동작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무용과 무대에 대한 열의와 집중도가 높습니다.”

창단 초기엔 무용단 운영이 순조롭지 못했다. 도무지 연습장에 들어서지 않거나 소리를 지르는 아이도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한 달여 만에 사라졌다. 연습실 밖을 맴돌던 아이들이 자청해 연습실로 들어섰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른 친구들의 동작을 따라하며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신체활동이 원활하지 못해 팔 다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고, 매번 전주에 배운 동작을 까맣게 잊은 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연습과정은 인내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축 처진 어깨와 팔을 똑바로 들어올리거나 노래라곤 불러본 적이 없던 아이가 무용의 배경음악으로 친숙해진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통해 임 교수와 단원들은 혼연일체가 됐다.

임 교수는 춤 진도는 더디지만 반복학습을 통해 15분 길이의 한 작품을 21개월여의 긴 훈련을 통해 익히고 있다고 했다. 현재 무용단의 레퍼토리는 부채춤·선녀춤 같은 한국무용부터 발레와 현대무용까지 5개에 이른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다를 게 없어요. 조금 불편할 뿐이죠.”

지난해 여름 제주에서 열린 지적장애인대회 기간 중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의 한국무용을 지켜본 외국인들이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고 무용을 통한 지적장애인의 교육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무용단 연습장소로 시설을 제공해주는 학교 그리고 연습 및 공연 때마다 단원들을 1대1로 돌봐주는 대림대 사회체육학과 자원봉사동아리 ‘풀빛마음’이야말로 임 교수의 든든한 동지들이다. 물론 아내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는 남편(채인호 서울대분당병원 심장내과 교수), 무용단의 공연을 챙겨보고 틈틈이 자원봉사하는 대학생 아들과 여고생 딸도 한결같은 후원자다.

이밖에 무용교육을 맡아주는 동료 무용가, 공연 팸플릿 제작 등의 경비를 후원해주는 지인들도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을 5년간 이끌어올 수 있었던 힘이 됐다. 공연 때면 성우 배한성, 바이올리니스트 허희정, CBS PD 김세광씨 등이 사회·협연·기획연출을 맡아 지원해준다.

임 교수와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은 오는 20일 안양시청 강당에서 열리는 ‘장애인의 날’ 행사의 기념공연을 앞두고 맹연습 중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경기 안양 대림대 한림관 무용실에 가면 이들이 땀흘리며 춤 연습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인터뷰 = 신세미 부장(문화부)
안양 =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