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원리?… 점괘 잘못 베낀 것일뿐!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 / 김경일 지음 /바다출판사

‘주역(周易)’을 보면 맨 처음에 “하늘이 갖춘 덕은 원형리정(元亨利貞)이다”며 동양문화의 대강을 정의하는 대목이 나온다. 후대 학자들이 동양문화를 정의하는 개요라고까지 일컬은 ‘원형리정’은 흔히 “원은 선함이 자라는 것,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 이(리)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이 네 가지 능력을 갖춘 이가 성인이다”고 풀이된다.

대만 중국문화대에서 갑골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상명대 교수)는 “갑골문을 통해 동양사상의 실체를 파헤쳤다”고 주장하는 책에서 이른바 ‘주역’과 같은 시기에 작성된 기록들을 읽어보니 ‘원형리정’이라는 네 글자가 상나라 때의 점괘를 잘못 베낀 것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주역’을 상나라의 점술문화를 종합 정리해 짜깁기한 책으로 정의한 저자는 책에서 상나라의 기록인 갑골문에 활용된 각각의 글자 용례를 제시한다.

가령 갑골문에서 사람 이름이나 지명으로 사용된 ‘원’은 ‘으뜸’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며 ‘리’는 낫으로 벼를 자르는 모습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곡식을 추수하는 상황에서 ‘이롭다’ ‘이득을 얻다’는 정도의 뜻이 파생됐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 ‘정’ 역시 ‘묻는다’ 정도의 의미로만 사용됐을 뿐, ‘사물의 근간’이라는 의미로 쓰인 예를 찾을 수 없으며 ‘형’은 상나라 갑골문은 물론, 전국시대까지 글자 자체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난 1999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으로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저자는 전작에 못지않은 파격적인 제목의 책을 통해 또 한번의 파란을 예고한다. 도가의 창시자인 노자는 실존 인물이 아니며 동명의 책도 상나라 때의 점술가 집단이었던 정인(貞人)들의 기록이라는 주장 등을 통해, 저자는 기존의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오랜 역사를 거친 중국인들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중화사상’에 대한 신봉일 뿐임을 역설한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