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겐 한없이 헌신… 자신에겐 지독히 가혹… 애달픈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전 :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 / 강제윤 글, 박진강 그림 /호미
김용택의 어머니 / 김용택 지음, 황헌만 사진 /문학동네

남도 주막집에는 어머니들이 참 많다. 막걸리의 깊은 맛처럼 웅숭깊은 정(情)이 뚝뚝 흐른다. 오갈 데 없는 ‘거리의 사람들’이 막걸리를 시키면 반 병 정도는 공짜로 주는 문화가 따뜻하게 살아 숨 쉬는 곳이 남도다. 언젠가 홍도로 가는 배 안에서 젊지만 매우 지친 뱃사람을 만났다. 낙지를 팔던 한 어머니가 그 청년의 입안이 꽉 차도록 낙지를 넣어 주던 광경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점점 삭막해지는 삶 속에서 절망과 자괴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것이 남도 주막 여행이다. 오랜 역사 속의 가난이 지켜 낸 아름다운 어머니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남도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섬과 강에서 자란 전라도의 두 시인이 쓴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짠하다. ‘보길도 시인’ 강제윤의 책은 제목이 심상치 않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라니. 그를 만난 어머니들은 “내가 세상 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은 너끈히 나온다”고 말한다. 강 시인은 2006년부터 나그네가 되어 항구와 포구, 섬을 떠돌고 있다. 그동안 200곳도 더 되는 섬을 걷고 또 걷는 중에 강 시인은 “성도 이름도 없이 평생 누구 어미라고만 불리며 살아온 어머니”들을 많이 만났다. 어머니들이 투박하면서도 진솔하게 털어놓는 ‘소설’은 드라마틱하면서도 슬픈 정서를 담고 있다. “급하게 밤에 데려다 놓고 뒷날 군인 가 버렸어. 즈그 어멈 밥해 주라고….” 청산도의 당리마을에 사는 한 어머니는 새신랑이 새색시를 밤에 데려다 놓고, 다음 날 입대해 버렸다고 했다. 결혼식도 평생 못해 봤다. 한 어머니의 얘기 뒤에 또 다른 어머니의 기막힌 사연이 이어진다. 어떤 어머니는 남편의 배가 풍랑을 만나 전복됐다고 한다. 간신히 헤엄쳐 왔으나 고향 바다 앞에서 뭍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오르지 못했다.

십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해 놓은 나무를 여전히 아껴 때며 사는 홀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저자가 목포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어머니는 항상 사약을 준비해 놓고 산다. “풍 오고 치매 오고 그런 거 나도 모른 순간에 와 빌더라고. 그럴 때는 얼릉 이걸 먹고 죽어 버려야제. 그래야 자식 안 성가시제.” 저자는 온갖 고생을 견디면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온 이유도 자식을 위해서였는데 오로지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려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라는 그 이름이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잔혹하다”고 말한다. “여자는 철들면 시집가는디, 사내놈은 철들면 죽어 뿌러.”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어머니들은 한 가닥 하는 삶의 고수들이고, 풍자의 달인들이기도 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그간 한 인물에게 시를 베껴 썼노라 고백했다. 자기 시의 원주인이자 시원(始原)으로 꼽은 인물은 바로 어머니다. 실은 김 시인의 어머니 ‘양글이 양반’은 이미 문단 안팎에서 입심 좋고 삶과 생명에 대한 혜안을 지닌 ‘문맹의 시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책에는 몸집이 작고 야무지다고 해서 ‘양글이’라는 별명이 붙은 저자의 어머니가 섬진강변으로 시집온 뒤 살아온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머니는 중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들에게 닭을 판 돈을 쥐여 줬다. 점심을 굶은 어머니는 버스비가 없어 장에서부터 집까지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오리 신작로를 걸어서 귀가해야 했다.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아! 어머니. 나는 돈을 꼭 쥐었다.”

어느 여름날. 무더위와 답답함을 느낀 저자는 작은 톱을 들고 마당에 있는 나무를 베어 넘겼다. 들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저자에게 새끼를 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어머니는 새끼줄 한쪽은 베어 버린 나무 밑동에 잡아매고, 다른 한쪽 끝은 그 옆에 있는 나무의 몸에 맸다. 저자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태연하게 “목숨을 건네준다”고 했다. 어머니의 진한 생명 사랑이 저자에게 남다른 시적 감수성을 건네주었을 것 같다. 섬진강 사진과 함께 저자의 어머니 모습을 담은 황헌만 작가의 사진이 환하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