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안내 받으며 100년전 서울 거리로…

1901년 서울을 걷다 / 버튼 홈스 지음, 이진석 옮김/푸른길

“모든 코리아 국민은 훌륭한 치아를 가졌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미소는 똑같이 모양이 좋은 순백색 상아의 멋진 배열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의 비결은 바로 소금이다. 칫솔도 사용하지 않고 치열 교정도 하지 않지만 매일 소금을 묻힌 손가락으로 이빨을 문지르고 잇몸을 문지른다.”

1901년 무렵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을 방문한 미국의 여행가이자 사진가, 영화감독인 저자가 가이드 겸 통역을 맡은 박기호씨의 치아를 본 뒤 남긴 인상이다. 고종의 법률·외교 고문 등을 지낸 미국인 그레이트하우스의 통역관이었던 박씨는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집안의 부녀자들을 거리낌없이 저자에게 소개해 당시 가정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진도 책에 실리게 됐다. 집안의 부녀자들을 남편의 친구에게조차 소개하는 것이 관습적으로 금지돼 있던 당시 상황에 비쳐볼 때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는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세계여행이 본격화됐던 시기다. 파리와 베이징(北京), 델리, 두브로브니크, 모스크바, 마닐라 등 지구상의 모든 대륙과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하고 3만 장이 넘는 사진을 촬영한 뒤 미국 각지의 대도시에서 기행영화를 상영했던 저자가 생생한 현장 사진자료와 짤막한 인상기를 총 10권에 담아 출간한 것이 바로 ‘Burton Holmes Travelogue’이다. 1901년 첫 출간 때는 ‘The Burton Holmes Lectures’라는 제목으로 나왔으며 1904년 저자가 ‘여행기(travelogue)’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뒤 재출간 때 이름을 바꿨다.

책은 1908년 재출간된 시리즈물의 10권에 일본 여행기와 함께 실린 서울 여행기(‘Seoul, the Capital of Korea’)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저자는 1901년 중국 치푸에서 제물포(인천)를 거쳐 서울에 입성했다. 책에는 방문시기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인천에서 한강철교를 건너 서대문역에 도착했다는 책 내용에 비춰볼 때 서대문역까지 경인철도가 완전히 개통한 1900년 7월 이후, 1901년 무렵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곳곳을 탐방했던 저자는 교외 여행에서 우연히 황실 종친인 이재순을 만난 인연으로 궁으로 초대를 받아 고종황제와 황실 인사들 앞에서 한국 최초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서술은 오류가 많지만 이 책에 수록된 1901년 무렵 인천과 서울의 일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총 133장의 사진은 구체적인 정보를 담고 있어 100년 전 서울 풍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선교사나 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한국에 왔던 외국인들이 남긴 글과 달리, 순수한 민간인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진과 글로 담아낸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번역을 맡은 역자(부산대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가 상세한 주석과 함께 원서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당시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 사진과 삽화 등을 추가로 수록해 놓았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