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아침에 눈뜨면 빨리 출근하고 싶은 회사, 늘 꿈꿔왔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은주 김영사 대표가 16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김영사 본사 정원의 돌계단 앞에서 우리 사회 멘토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연수 기자 nyskim@munhwa.com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서로 다른 나무와 꽃들이 저마다 자기 빛깔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김영사 본사는 책의 숲이었다. 곳곳의 서가에 비치된 다양한 김영사 책들이 각기 다른 리듬과 멜로디를 들려준다. 본관 위 작은 정원을 지나 층층 돌계단을 올라가면 외부 집필자를 위한 한옥 한 채가 있다.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어느 산속 작은 암자에 와 있는 것 같다. 그곳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맑고 정갈한 곳이란 느낌이 드는 곳이다.

16일 이곳에서 만난 박은주(55) 김영사 대표가 가볍게 걸친 외투도 나무들의 녹음과 썩 잘 어울렸다. 인터뷰도 개울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탁월한 기획력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진 박 대표의 말에서는 집중력과 간결함의 미덕이 묻어났다. 그는 이날 오후를 문화일보 인터뷰를 위해 비워놨다고 했다. 점심도 거른 채 진행된 인터뷰는 4시간을 넘겼다.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조계종 사태와 불교의 참뜻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박 대표는 매일 아침 저녁 금강경을 읽으며 지혜와 혜안을 얻고, 108배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본다고 했다. 우리나라 출판사상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든 사람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필자가 아는 지인들 중에 박 대표가 왜 출가하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다. 이 질문에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지만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막힘없이 얘기를 풀어냈다.

“지금 우리는 눈 뜨면 달라지는 복잡한 사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이런 세상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은 산속 수행자 못지않습니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자신들이 종사하고 있는 천직을 통해 세상을 향해 복 짓는 일을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꼭 머리를 삭발하고 절엘 가야 출가인가요?”

박 대표는 “우리 직원들을 보면서, 도인이 따로 없구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식정보와 깨우침을 주는 책을 만드는 직원들이야말로 진정한 도인들이구나. 100명이 넘는 도인과 함께하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산에 안 들어가도,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박 대표의 표정은 그 어느 대목보다도 진지했다. 온갖 갈등과 문제에 부딪히면서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도 치열한 수행이자 명상이라는 것이 박 대표의 지론이다.

조계종 도박사태의 원인을 묻자 ‘스승의 부재’라는 데 방점을 콕 찍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그분들도 청정한 마음으로 출가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은 게 아닌가 해요. 수행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는 자신을 넘어서는 공부를 하는 일이 너무도 힘들기에 꼭 자신을 바로잡아줄 스승이 필요합니다. 스승이 없으면 좌표를 잃고 헤매거나, 방심하거나 유혹에 빠지기 쉽지요. 제게는 스승이 계셔서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공부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그의 말을 들으니, 언젠가 읽은 경전에 ‘스승이 없거든 마당에 막대기라도 꽂아놓고 스승을 삼으라’고 한 구절이 생각났다.

화제를 출판과 정치의 역학관계로 돌렸다. 김영사가 낸 책은 1000만 부를 돌파한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와 ‘앗 시리즈’ 등이 있지만,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책도 많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김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해 대통령이 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내놓은 에세이 ‘신화는 없다’도 90만 부 넘는 베스트셀러였다. 국가적 리더를 당선시킬 수 있는 책을 김영사처럼 내놓은 출판사는 별로 없다. 정작 박 대표는 “이 두 권의 책은 대선을 의식해서 만든 책이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의 해인 올해도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책이 나올 것인지 궁금했다. 원고가 들어오는 대로 바로 출간할 예정이라는 답을 들었다.

―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정치에도 관여하게 되는 셈입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관여를 하게 되지요. 책은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기업인도, 문화예술인도, 교육자도 마찬가지죠. 요즘 많은 정치인들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는 책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강연만으로는 자신의 생각, 비전 등을 다 담아낼 수 없지만, 책을 통해서는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요. 부모·형제 등 가족사부터 정치 입문 과정, 자신의 철학, 정치관, 국가관 등 모든 얘기가 가능하지요.”

―김영사가 킹메이커라는 외부의 평가도 있습니다. 올해 안철수 원장의 책이 김영사에서 나와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21세기는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 과학기술, 교육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회의 최전선에서 세상을 이끌어 가는 전문가의 시대입니다. 정치만이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보다 풍요롭게 변화시키지는 않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안 원장님이 보수·진보 양쪽을 아우르는 정치인들의 멘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정치계에 들어가면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진영 논리에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원장님은 멘토로서 양쪽 진영을 모두 품어 안는 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안 교수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시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간접적으로 참여하길 바라는 것이죠. 좋은 글, 좋은 책으로 정치인들의 사고가 경직되지 않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죠. 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더욱 활발히 해 각 분야의 리더로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머니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시시비비를 너무 따지지 말고 조금 부족해도 품어 안고, 나와 생각이 좀 달라도 품어 안는 포용의 마음, 자비의 마음을 열어가면 어떨까요? 여성은 체질적으로 폭력을 싫어하고 학연·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여성들이 크고 작은 단체의 리더가 되면 세상이 보다 더 여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질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여성이 주요한 조직의 말단에서 출발해 최고위층까지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더군요.

“세상을 개척했던 앞선 여성들의 노력으로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여성들이 자기실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요. 앞으로는 여성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지고, 진정으로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출산문제, 육아문제를 해결하려 함께 노력해줘야 해요.”

김영사가 내놓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다. 박 대표가 단 1만 명의 독자라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는 이 책은 지난 4월 100만 부를 돌파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나온 뒤 정의는 2010년 한 해를 달군 뜨거운 트렌드가 됐다.

―정의 열풍이 불었던 것은 부패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고 보시나요.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정의로운 길, 옳은 길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책이 많이 팔렸다고 생각해요. 우리 속에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야 아름다운 그림을 만났을 때 전율을 느끼듯이, 옳은 길을 추구하는 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에 정의라는 주제에 곧 공감을 하고 정의 열풍을 낳았던 것이죠. 독자분들이 스스로 정의 책을 선택한 것이지요. ‘내가 찾던 바로 그 책이야!’하면서요. 저도 똑같이 그랬거든요. 2007년 뉴욕에 있는 저희 스카우터가 미국 출판계에서 기획 중인 도서들의 목록을 보내왔어요. 그 많은 책 제목 가운데 유독 ‘Justice’란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강렬한 끌림이었지요. 제목과 저자 이름만 있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화두가 정의라고 생각했고 주저없이 계약을 서둘렀습니다. 출간 후 수많은 독자분들이 호응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나가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죠. 우리 민족은 본래 정의로운 길을 추구하던 민족이었지요.”

―역사적 근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순리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음양오행, 다시 말해 우주의 이치에 맞춰 집을 짓고 살았고, 옷 한 벌에도, 밥상 하나에도 우주를 담았지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양식은 수준이 매우 높았어요.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 문화인이었습니다. 춤과 노래를 보더라도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요. 한류도 역사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에요. 한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고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빛낼 것입니다.”

―마이클 샌델과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신다면.

“샌델이 처음 한국에서 대중강연을 할 때 1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코엑스를 대관했어요. 그런데 신청자가 쇄도해 결국 5000명 규모의 경희대 평화의 전당을 빌렸지요. 일곱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부터 각양각색의 청중들로 평화의 전당이 가득 찼어요. 경청의 힘이 대단했어요. 중·고등학생들도 영어로 직접 질문을 했지요. 이런 한국 청중들을 보고 오히려 샌델이 감동해서 ‘한국 청중들에게 A학점을 주겠다’며, 서울 강연을 하버드대에서 강의하겠다고 했어요. 샌델도 샌델이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한 권의 책이 사회적 현상이 되고, 지방선거에까지 영향을 줬다는 점은 학계의 케이스 스터디 감인데요. 김영사는 출간시기를 2010년 6·2 지방선거 직전으로 잡지 않았습니까.

“저는 무엇보다 이 책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국민적인 논의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 만족합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 영역을 벗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를 한번쯤은 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다양한 정치 논의가 활발한 선거 기간에 정의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출간 시기를 맞췄어요. 선거 3일 전에 책을 냈죠. 그때 책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100만 부가 넘어가는 책들의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100만 부를 넘어가는 책이라…. 그건 운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어요. 20만 부까지는 제 노력으로 가능하고, 예상도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는 것은 운이에요.”

―그럼 20만 부가 팔리는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많은 부수와 지속성으로 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들도 있다고 봅니다.

“기획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리처드 도킨스 책처럼 고정관념을 뒤집는 책, 그런 것은 독자들도 궁금할 수밖에 없죠. 또한 새로운 내용의 책, 마음을 밝혀주는 책들을 기획하려 합니다. 저 자신이 그런 책을 좋아하니까요. 다음에는 그 책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을 최대한 살려서 편집과 디자인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꾸는 위력을 실감하는 일이 많습니다. 책에는 전략, 비결, 라이프스타일, 정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출판은 신문이나 방송과는 달리 호흡이 더 긴 미디어입니다. ‘인턴X’ ‘재미있는 수학여행’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등 20여 년 전에 낸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으니까요. 지난해 교보문고 집계를 보니 한 해 팔린 김영사 책이 850종이 되더군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담은 책이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책을 만들고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보고 또 보고,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싶고, 자다가도 만지고 싶은 책을 내야 하는데, 상황이 잘 안 되어 미진한 채 출간하는 책도 종종 있어요. 저자의 재촉에 못이겨 미완성인 채로 서둘러 마무리한 책도 있어요. 마음이 흡족해야 열의를 다하게 되는데, 뭔가 부족한 상태에서 출간을 하게 되면 두고두고 후회가 돼요. 저자를 더 설득했어야 하는데, 하고요.”

김영사가 의욕을 갖고 2009년에 내놨던 장성민 씨의 책 ‘전쟁과 평화―김정일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는 의외로 예상만큼 안 팔린 것 같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좋은 책인데 많이 안 나가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겠죠. 아니면 우리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에 식상한 것이거나. 가치 있는 일에는 비록 성과가 없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흥미롭게 읽었고, 읽은 분들이 국제문제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니까 보람이 있죠.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책을 또 하나 들자면 ‘예수평전’입니다. 한 사람의 학자가 평생 자료를 찾고 천착해온 연구성과를 한 권으로 압축해낸 작품입니다. 정말 훌륭한 책이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요.”

―평사원에서 시작해 31세에 사장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직원들이 월급쟁이 의식을 버리고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침에 눈을 뜨면 빨리 출근해서 일하고 싶은 회사, 상상이 되시나요. 제가 늘 꿈꾸던 회사의 모습입니다. 월급 받고 일하는 곳이 아닌,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소중하고, 고마운 공간이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어요.”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5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공헌할 만한 책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내년 정도에 그 결과물을 선보일 것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 그리고 융합에 대한 책을 꾸준히 기획하려고 해요. 몸과 마음의 융합, 정신과 물질의 융합, 지구와 우주의 융합 등 미래에 만나게 될 세상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죠. 만화를 잘 그리려 해도 의학, 통계학, 인문학 소양이 필요하고, 작곡을 잘하려면 수학과 건축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한 것처럼 융합은 필연적인 흐름입니다. 얼마전에 출간한 ‘생각에 관한 생각’도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문 대니얼 카너먼의 책이었지요.”

긴 인터뷰를 끝낼 때쯤에는 박은주 대표의 삶 전체를 꿰뚫는 화두인 생활 속 수행과 경계를 허무는 상상력이 세상을 비누처럼 맑게 밝게 닦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박 대표가 만들어갈 미래의 김영사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인터뷰 = 예진수 문화부장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