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확대와 경제성장이 가난퇴치 걸림돌?

적정기술 그리고 하루 1달러 생활에서 벗어나는 법 / 폴 폴락 지음, 박슬기 옮김 /새잎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충분한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전 세계 절대빈곤 인구 대부분이 1에이커(약 1224평) 농지를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빈농들’이다. 이들을 빈곤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노동집약적이며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을 재배하고 판매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가. ‘아주 저렴한 농지용 관개시설, 품질 좋은 종자와 비료, 그리고 작물을 내다 팔 시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처럼 단순한 진실들을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국제개발사업(IDE) 설립자인 저자는 아주 기본적인 호기심에서 빈곤퇴치 운동을 시작했다. 바로 앞에 인용한 질문과 맥락이 같은 의문들이다. ‘무엇이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그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책의 제1장 ‘실용적인 문제 해결의 열두 단계’를 보자. 그중 1~3번 항목은 ▲현장으로 가라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와 대화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라 ▲문제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라 등이다 (나머지 항목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주문인가.

저자가 들려주는 오늘날 전 세계의 빈곤 현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전 세계 8억 명이 개발도상국의 농촌 지역에 살며 소규모 농지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간다. 4분의 1 에이커 크기로 흩어져 있는 밭 조각들을 생계수단으로 삼지만, 대부분은 토질이 나쁘고 관개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다. 주요 재배작물은 쌀, 밀, 옥수수이지만 생산량이 너무 적어 자급하기에도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다. 더구나 쌀이나 밀, 옥수수를 키워서 시장에 내다 판다 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낮아서 에이커당 200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가 어렵고 이 정도로 가난에서 벗어나기란 역부족이다.”

통계적으로 접근하자면, 아프리카 인구 대부분이 거주하는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의 비율은 1990년부터 2002년까지 약 44%로 동일했으며, 인구는 오히려 1억4000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빈곤 문제는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점은 빈곤 문제에 대한 ‘세 가지 거대한 허구’가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세 가지는 ▲기부를 통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 지속되면 빈곤이 사라질 것이다 ▲대기업이 빈곤을 없애줄 것이다 등이다. 당연해 보이는 해답들이 오히려 해결책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세계 빈곤인구의 대다수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산업 성장의 물결에서 소외되기 쉬운 변두리 외딴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 대규모 농업 프로젝트, 대규모 관개시설, 정부가 운용하는 대규모 예산 등으로부터 1에이커 농지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빈곤한 농가는 소외돼 있다는 것이다. 책의 본론은 이 같은 빈곤계층이 실제적으로 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매우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직접 책을 펼쳐 보시길.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