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이? 미모? 벗겨보면 ‘한꺼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신체 기관인 피부는 신체의 완전성을 유지해 주는 한편,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과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양문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스킨(Skin)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 / 니나 자블론스키 지음, 진선미 옮김 / 양문

우리는 일반적으로 피부색으로 인종을 나눈다. 왜, 흔히들 황인종·백인종·흑인종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피부색 자체는 인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다시 말해 “사람을 피부색으로 분류하는 방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단지 “피부색은 적응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좀더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 신체의 다른 부위들처럼 피부색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며, 또 그와 같은 자연선택은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지역의 햇빛 환경에 근거하여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대략 눈치를 챘겠지만,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피부’를 세세히 분석, 고찰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상식처럼 알고 있는 피부에 관한 지식들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또는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 피부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몸집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 무게는 무려 4㎏이나 된다. 그렇다면 넓이는 얼마나 될까. 약 2㎡(약 0.6평)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무게와 넓이가 훨씬 더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 한 가지 더. 피부는 신체의 기관일까, 아닐까.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피부는 분명 신체에서 가장 크고 뚜렷하게 보이는 기관이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필수적인 기관이다. 더욱이 피부는 심장이나 위·폐 등 내장기관과 달리 끊임없이 재생되기 때문에 기능 부전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인간의 피부가 동물 피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피부는 매우 독특하다. 우선, 털이 없고 땀을 흘린다. 두피와 외음부, 겨드랑이, 그리고 남성의 턱을 제외하면 우리 몸에는 사실상 거의 털이 없다. 이는 인간을 다른 포유류들과 명백하게 구분하는 현상이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들보다 땀을 훨씬 더 많이 흘리며, 피부에 털이 없기 때문에 땀이 빨리 증발하고 따라서 더 효과적으로 몸을 식힐 수 있다.

또한 인간의 피부는 짙은 갈색이나 거의 검은색에서 창백한 상아색이나 거의 흰색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색을 띤다. 이는 다른 포유류들과 구분되는 두 번째 특성이다. 적도 부근의 가장 짙은 색 피부에서부터 극지방 인근의 가장 밝은 색 피부에 이르기까지 마치 무지개처럼 다양하게 분포한다. 자연적인 경사, 즉 연속변이의 형태인데 이것은 자외선의 강도와 가장 큰 관련이 있다.

인간의 피부는 장식에도 사용된다. 이는 다른 포유류들의 피부와 구분되는 세 번째 특성이다. 우리의 피부는 단순한 생리적 상태나 나이만을 반영하는 수동적 ‘덮개’가 아니다. 피부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지 보여주는 개인적 태피스트리(tapestry)이기도 하다. 피부에 인위적으로 만드는 장식은 정교하고도 의지가 담긴 광고다. 이때 피부는 사회적 플래카드가 되며, ‘광고판 겸용 포장재’ 역할을 한다. 즉 인간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피부를 노출시키고, 덮고, 색칠하고, 문신을 새기고, 심지어 흉터를 만들거나 구멍을 뚫는다.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누누이 지적하고 있다. 한번 더 강조하자면, “위도에 따라 피부색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까닭은 지구 표면에 닿는 자외선 양이 위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멜라닌색소 형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또한 극지방으로 갈수록 피부색이 옅어지는 것은 비타민D 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낮은 수준의 자외선은 비타민D 생산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에 자외선을 차단하는 멜라닌색소의 형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고대 선조들이 적도 지역에서 이주해나감에 따라 자외선에 대한 노출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자외선이 적은 환경에서는 짙은 피부가 비타민D 합성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경향을 띠게 된다”면서 “그러므로 인류가 열대 지역 바깥으로 이주함에 따라 자연선택의 힘은 비타민D의 합성을 촉진하기 위해 피부색을 옅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재차 강조한다.

그렇다면 왜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생겼을까. 한마디로, 유럽인의 제국주의적 팽창 때문이다. 힘으로 아프리카를 식민화하고 그곳을 자원과 인력 공급처로만 간주했던 시대에는 짙은 색 피부를 불량한 인격이나 도덕성 결핍 등과 동일시하며 노예무역을 합리화했던 것이다. 검은 피부를 지닌 주민들은 얼굴이 붉어져도 잘 보이지 않았으며, 이는 그들이 도덕적 감정, 특히 부끄러움이 없다는 증거로 간주됐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갖춰야 할 도덕의식이 결여된 것으로 규정된 ‘검은 피부의 노예’들은 하등 인간으로 비하됐던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피부를 통한 ‘촉각의 세계’도 면밀히 고찰한다. ‘건드리지 마’라든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야’ 등의 표현은 피부가 가장 민감한 감각기관임을 나타내는 방증이다. 따라서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성(性)적 기관’이기도 하다. “섹스에서 얻는 기쁨의 상당 부분은 섹스 그 자체를 하는 동안이나 섹스를 하기 전후에 행해지는 ‘피부끼리의 접촉’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즐거움, 그리고 농밀한 접촉에 대한 기대감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직접 책을 펼쳐보시길.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