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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6월 01일(金)
1920년대 이 어린 신부에게 결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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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 / 김경일 지음 / 푸른역사

일제강점기인 1924년 8월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사는 정차숙이라는 19세 여성의 ‘임의결혼’ 소식이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양반집 처녀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혼처를 구하러 충청도로 간 사이, 평소 사귀어 온 한미한 집안 출신의 박평길이라는 남성과 부모의 승낙을 받지 않고 신식 결혼을 감행했다.

정차숙은 당시 망설이던 박평길의 손목을 끌고 근처 학교로 가서 자신의 일가를 다수 모아놓고 “이 남자와 일평생을 지낼 터이요. 이후부터는 이 사람이 우리 남편이니 이 사람 이외에는 어떤 사람과도 결혼하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한 뒤 악수와 경례를 했다고 한다. 신교육을 받지 않은 외진 시골 처녀가 부모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신식 결혼을 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이 사건은 ‘동아일보’에 보도된 뒤 서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즉각적인 논쟁을 유발했다. 이 와중에 정씨 문중의 친척들이 마을에서 음식점을 영업해온 박평길의 삼촌 집 교통을 차단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해 그가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1920년대 자유결혼과 강제결혼의 이념적 대립을 극명하게 드러낸 이 사건을 둘러싼 열띤 논쟁과 관련, 저자는 전통과 근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또는 남성과 여성이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당시 시대정신이 대변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1920, 30년대를 대상으로 이 시기 결혼과 조혼 문제, 가족과 현모양처, 이혼, 가족의 대안 형태들을 살펴본 책은 저자가 지난 2004년 펴낸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의 자매편에 해당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요즘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결혼 등의 문제에서 모순적인 이율배반에 직면했던 젊은 세대의 상황에 주목한다.

책은 개인 생애의 순차적 전개에 맞춰 ▲결혼 ▲가족 ▲이혼 ▲대안과 비전 등의 4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자유연애와 사랑, 인격에 대한 존중 등 1920년대 논쟁에서 이상적 결혼을 구성해온 조건들이 1930년대에 들어와 보수적이고 통속화됐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대표적인 신여성인 나혜석의 사례를 제시한다.

남녀평등을 지지했던 그도 정작 가정 내 부부 사이의 남녀평등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나혜석이 이상적 가정을 말하면서 가족 내에서는 “남녀평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불평을 갖는 수가 많다”고 언급한 게 바로 그것. 그는 오히려 “남편은(이) 아내보다 우월감을 가지고 부득이한 일 외에는 자기 혼자 처리하는 것이 오히려 불평이 없다”며 “신가정에 충돌이 많고 구가정에 평화가 유지되는 사례가 그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매결혼과 연애결혼, 구식 결혼과 신식 결혼, 여성의 재혼 문제 등 결혼을 둘러싼 전통과 근대의 대립과 갈등 양상을 구체적인 통계를 제시하면서 살펴본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전통 결혼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였던 조혼(남자 만 17세, 여자 만 15세 기준으로 그 이하의 나이에 결혼하는 것)에 주목한다.

조혼은 근대로 이행하면서 지식인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말기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며 존속했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제강점기 전체 결혼 수의 4~14% 정도가 조혼이라는, 법률로 인정되지 않은 실질혼 상태로 살았다는 것이다.

1930년대 초에는 조혼의 비중이 이례적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자기 과시 욕구와 가족 단위에서의 노동력 확보, 미신적 이유 또는 불안한 사회적 상황 등을 전통사회에서 조혼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조혼의 지속을 통해, 전통의 영향력 또는 전통사회의 상황적 요인들이 강고하게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일제강점기 가족과 현모양처, 정조의 문제, 이혼 실태 등을 다룬 뒤 별거와 독신 생활, 시험결혼과 우애결혼 등 결혼과 가족의 다양한 대안형태들을 책에서 소개한다.

가족과 결혼을 둘러싼 근대 한국의 다양한 풍경들을 제시하고 있는 책은 기존의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다른 책들과 비교해 학술적인 것이 특징이다. 재미는 덜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족 문제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다양한 자료와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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