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책읽기>농업이 불러온 외상·전염병·스트레스

판도라의 씨앗/스펜서 웰스 지음, 김한영 옮김/ 을유문화사

이 책의 주제는 도전적이다. 농업이 전염병과 만성질환, 스트레스와 전쟁을 불러왔다는 것. 저자는 인류가 농업의 발명을 통해 수렵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극적인 삶의 변화를 이룩했던 1만 년 전의 결정적 순간에 주목한다. 그는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외상, 전염병, 만성질환 등 세 가지 죽음의 파도가 들이닥쳤다”고 역설한다. 정착생활과 함께 인간과 동물이 가까워지자 전염병이 외상을 누르고 주된 사망원인으로 부상했다.

책은 정착생활 때문에 이동과 선택의 자유는 사라졌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우울의 전조인 일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물을 비롯한 제한된 자원들을 분배해야 하는 상황이 계급 구조와 불평등을 낳았다는 점도 명쾌하게 해부한다. 농업이 만든 인구 과잉과 지리적 제한, 대규모 집단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현대 생활에서 광고와 기계가 만드는 소음 등이 우리가 선사시대부터 물려받은 진화적 습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농업에서 비롯된 문명의 속성과 인간의 진화적 본성 간의 충돌을 매력적인 문체로 묘사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