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버린 음식물, 누군가엔 ‘생명’이 된다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발렌틴 투른 지음,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오이의 생김새가 반듯한 것부터 굽어 자라는 것까지 다양하다는 것쯤은 굳이 시골출신이 아니더라도 덩굴에 오이가 달린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게 대형마트의 채소 코너에는 죄다 쭉쭉 뻗은 잘 생긴 오이들뿐이다. 호박이야 재배단계에서부터 비닐에 씌워 키우니 공산품처럼 규격화됐다고 쳐도, 굽어 자란 오이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런 오이는 모두 버려진다. 유통기한을 갓 넘긴 슈퍼마켓의 우유야 말할 것도 없고, 대형마트에 진열된 딸기 상자 안의 한 알의 딸기만 짓물러도 곧장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 이파리 끝이 시든 채소도, 두 개의 뿌리가 달린 무도 죄다 쓰레기통 행이다. 상한 것들만 하나 하나 골라내면 좋을 텐데 대형마트에서 그런 일을 하는 직원을 따로 고용하자면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드니 구태여 그럴 이유가 없다.

직관적인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음식물이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이유를 추적한 책이다. 음식 쓰레기 문제라면 얼핏 ‘흥청망청한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행태’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저자는 보다 더 큰 문제는 ‘식품의 낭비적 유통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굽은 오이의 예를 다시 꺼내보자. 상인들은 까탈스러운 소비자들이 모양이 좋지 않은 농산물을 사지 않기 때문에 버린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포장과 운송에 반듯한 오이가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에 유통업자들이 굽은 오이쯤은 가차 없이 버린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2009년까지 20여 년 동안 ‘오이의 기준’을 적용했다. 그 기준이라는 게 우습게도 10㎝짜리 오이가 1㎝ 구부러진 것까지만 유통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굽은 오이는 슈퍼마켓에 아예 나올 수조차 없었다. 지나치게 기준에 연연하는 태도와 버려지는 식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유럽연합은 뒤늦게 이 기준을 삭제했지만, 여전히 슈퍼마켓에 굽은 오이는 나오지 않았다. 유통업자들은 애초부터 이런 오이의 유통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버리는 오이로 인해 상인들이 손해를 보지 않을까. 유통기한을 넘겨서 매일 버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우유가 업체의 손실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하지만 걱정을 붙들어 매란다. 상인들은 굽은 오이를 버려서 보는 손해를, 반듯한 오이를 비싸게 팔아 상쇄하기 때문이다. 버리는 비용을 모두 상품가에 떠넘겨버리니 우유가 과잉생산되고, 신선식품들이 대형마트의 진열대에서 팔리지 않은 채 유통기한을 넘겨도 유통업자들은 끄떡도 없다는 얘기다.

저자가 주장하는 식품유통의 낭비적인 시스템의 구조는 이렇다. 생산자들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유통기한을 짧게 유지하며 과잉생산을 하고, 대형마트들은 소비자들을 붙들기 위해 진열대가 차고 넘치도록 물건을 늘어놓는다. 하기야 식품을 과다하게 사들여 유통기한을 넘겨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는 것보다, 물건이 떨어져 손님들이 다른 경쟁 가게로 가게 되는 것이 대형마트입장에서는 훨씬 더 끔찍한 일이다. 거기서 손실이야 소비자들에게 떠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니 대형마트의 식품은 항상 남고, 늘 버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확과 유통단계부터 마구 버려지는 식품이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간 뒤에는 또 어떤가. 식품으로 조리를 해서 남는 것을 음식물쓰레기로 내보내는 것쯤은 그래도 양반이다. 대형마트들의 이른바 ‘원플러스원’ 상술에 휘말려 필요하지 않은 식품을 잔뜩 사들였다가 아예 포장도 뜯지않은 채 냉장고에서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음식이 놀랍게도 전체 음식물의 절반이나 된다. 말하자면 ‘먹는 만큼 버린다’는 얘기다. 열혈 운동가의 침소봉대식 주장이 아니라 믿을 만한 유럽국가의 정부통계가 그렇다.

책에서 음식물쓰레기 문제는 단순한 낭비의 차원에서 벗어나 환경, 기아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저자는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구성원의 노력과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의 결론은 과잉사회에서 ‘책임 있는 소비사회로 이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식량 낭비를 막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사회변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지와 함께 사회단체와 운동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진지한 제안을 다루고 있다.

책은 음식쓰레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쓰레기 맛을 봐’의 감독과 프리랜서 기자가 공동집필했다. 영화 감독이 다큐멘터리 촬영과정에서 목격하고 관찰한 장면을 생동감 있게 재구성해 보여주면, 프리랜서 기자가 식량이 낭비되는 이유에 대해 분석하고 유통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식이다. 개인적 관찰로 담아낸 다큐멘터리와 다소 딱딱한 ‘사실’을 다룬 인문서가 결합된 ‘하이브리드’쯤 된다는 게 두 명의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이 책의 특징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