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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Global Focus 게재 일자 : 2012년 07월 13일(金)
아버지가 친부모 죽인 원수였다니… 30년만에 찾은 ‘진실’
아르헨 군사독재 정권 유아납치 사건의 전말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지난 5일 남미대륙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법원 밖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숨죽여 독재자의 재판결과를 기다렸다. 군사독재 정권을 이끌었던 호르헤 비델라(86)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에게 사실상 종신형이 내려지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록밴드들은 축하공연을 벌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권(1976~1983년) 시절, 반체제 인사들을 구금·살해하고 그들의 아이를 강제 입양한 ‘더러운 전쟁’을 벌인 군벌들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비델라 전 대통령(1976~1981년 집권)에게는 징역 50년형이, 레이날도 비그노네(84) 전 대통령(1982~1983년 집권)에게는 15년형이, 그 외 9명의 군부 인사들에게도 15~40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전 세계는 독재정권이 수백 명의 유아를 납치하고, 그 부모를 죽인 원수의 집안에 입양시킨 잔혹한 사건에 경악했다. 1970~80년대 자행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추악한 전쟁 당시 실종자는 최대 3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도 500여 명 강제로 입양되는 수난을 당한 것이다.

◆ 더러운 전쟁의 전말

독재자는 왜 아기를 납치했을까. ‘더러운 전쟁’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가 잔혹무도하게 반대파 색출을 하며 벌인 공포정치를 일컫는다. 1976년 비델라 정권은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들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전국적인 게릴라 소탕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좌파 운동가와 지식인, 예술가, 페론 지지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살해했다. 당시 이사벨 페론 정권을 군사 쿠데타로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한 비델라는 반대파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살아 생전 나오기 어려워 죽음의 수용소라 불린 600개의 비밀수용소가 전국에 설치됐다.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고문에 시달렸고, 사망하면 바다에 버려졌다. 더러운 전쟁 동안 살해·실종된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1만3000여 명, 인권단체가 주장하는 수는 3만여 명에 달한다. 비델라는 고문과 살해 등의 혐의로 이미 지난 2010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유아납치는 더러운 전쟁 중에서도 가장 반인륜적이었다. 비밀수용소 수감자 중 임신한 여성은 고문장에서 수갑과 족쇄를 한 채 분만을 했고, 눈도 가려져 아기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산모는 출산 직후 아기를 빼앗기고 군용기에 실려 산 채로 바다에 던져졌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군인, 경찰 등 친정권 인사 가정에 입양됐다. 10세 이하 아이들도 부모가 처형된 후 강제로 입양됐다. 당시 강제 입양된 유아의 수는 5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판에서는 수용소 두 곳에서 유아 35명이 강제 입양된 사실만 입증됐다.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의 반인륜적 유아 납치는 식민 모국인 스페인 독재정권의 악행과 닮아있다.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정권(1939~1975년)은 좌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3만여 명에 달하는 유아를 납치했다. 유아납치는 의사, 수녀까지 관여하는 광범위한 인신매매 사업으로 확장돼 프랑코 정권이 끝난 후에도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지난 4월에는 노수녀 마리아 고메스(87)가 무려 30만 명이 넘는 신생아를 매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 길고 더뎠던 과거사 청산

더러운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던 197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 앞 5월 광장에서 14명의 어머니들은 실종 자녀들을 찾아달라고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그 후 이들은 ‘5월 어머니회’라는 인권단체를 조직하고 비델라 정권의 탄압에도 꿋꿋이 매주 목요일 유아납치 진상규명과 독재정권에 대한 처벌을 요구해왔다. 이들은 지난 1996년부터 정부를 상대로 유아납치 사건들을 제소해왔다. 정부 차원에서는 좌파정권이 과거사 청산을 주도했다.

1983년 군부독재를 끝낸 라울 알폰신 민정은 군정 청산의 일환으로 비델라를 비롯한 군부 인사 370여 명에게 반인도주의 범죄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알폰신의 뒤를 이은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1990년,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이들에게 특별사면 조치를 내린다. 2003년에 와서야 대표적 좌파 지도자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사면법을 폐기하면서 군부지도자들이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이 들어선 후 2011년 2월부터 군부의 유아납치에 대한 재판은 급물살을 탔다.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만 370여 명에 달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2010년 아르헨티나 최대 미디어그룹 그루포 클라린이 군정의 인권탄압 행위에 동조했다고 비난하고 사주의 자녀들도 당시 강제입양된 아이일 수 있다며 친자 확인을 명령하기도 했다.

◆ 30년 만에 다시 찾은 이름

당시 입양된 아이들은 이제 30대의 성인이 됐다. 이들은 자신이 입양된 사실도 모르고 살다가 최근에서야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게 됐다. 이들의 삶은 고위 경찰가정에서 양육된 엘리트, 군인가정에 입양됐지만 그 집 하녀에게서 자라나 맥줏집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 등 다양하다. 현재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피에트라갈라 코르티(34)는 부모와 다른 외모를 이상하게 여기다 지난해 관계당국을 찾았고, 자신이야말로 친부모를 강제로 뺏기는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슷한 시기 제 이름을 찾은 빅토리아 몬테네그로(36)도 자신이 아버지라 여겼던 테츨라프 중령이 친부모를 살해한 장본인임을 알게 됐다. 그는 살해 및 납치 혐의로 구속된 양아버지를 결국 용서했다.

2008년 친부모의 존재를 알게 된 마리아 에후에니아 삼파요 바라간(34)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법원에 자신을 강제입양한 양부모에게 납치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할 것을 청원했다. 그는 “이것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피해자들과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라우라 레이놀드 시베르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으면서 납치된 500여 명의 아이들 중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105명이 됐다. 아르헨 정부와 5월 어머니회는 축적된 유전자 자료 등을 활용해 꾸준히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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