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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8월 17일(金)
러시아의 조지 오웰 ‘혁명이후 소련’을 풍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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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피판의 갑문 /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과지성사

러시아의 조지 오웰 또는 밀란 쿤데라라고 할까. 이 책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살았던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의 중·단편 소설선집이다.

러시아 혁명기에 활동한 플라토노프는 ‘무정부주의자’ 혹은 ‘허무주의자’로 몰렸던 인물. 살아 생전 그의 작품들은 거듭 출판이 좌절됐고, 그나마 발표된 작품들도 정치적 단죄의 대상이 됐다. 묻혀 있던 플라토노프의 소설들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였다. 작가 사후 3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말에야 플라토노프의 대표작들은 러시아에서 출간될 수 있었다.

플라토노프의 작품들은 이미지와 상징의 외피를 입고 철학적 문제들을 다룬다. 그는 인류사를 자연과 인간 간의 대결 과정으로 파악했다. 아울러 ‘나’와 타자, 시간과 공간, 몸과 정신의 분열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천착했다. 그런 점에서 플라토노프의 문학은 도스토옙스키에서 정점을 이루는 러시아 문학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플라토노프는 특히 소설을 통해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권이 경직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관료주의를 독특한 풍자로 증언한다. 그의 문학은 혁명의 격동기를 견딘 민중의 역사인 동시에 역사성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의문에 대한 모색이었다. 플라토노프가 예술적 재능을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장르는 중·단편 소설이었다. 그의 심오한 철학적 탐구와 촌철살인의 풍자, 이를 표현하는 압축적이고 화려한 문체는 중·단편과 잘 맞아떨어진다.

예컨대 수록작 ‘그라도프 시(市)’는 플라토노프의 풍자가적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두 부류의 관료가 등장하는데, 구체제 출신의 노회한 관료인 보르모토프와 소비에트 출신의 신진 관료 시마코프가 그들이다. 소설에서 풍자의 화살은 두 유형의 관료 모두에게 향하지만, 작가의 주된 목표가 되는 것은 관료주의 이데올로그이며 선전가인 시마코프다. 시마코프는 관료주의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돼야 할 기풍으로 생각한다.

이 같은 주장의 근저에는 시마코프 특유의 관료주의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질서의 조화로운 이성’은 1917년 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사회주의 조국’으로 구현됐다. 따라서 관료제는 그러한 이성의 섭리를 완전히 실현할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그라도프 시’를 시작으로, 1920년대 후반 플라토노프의 작품에는 소비에트의 사회 현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한 작품들은 당연히 풍자적 경향을 띤다. 아울러 독특한 문체를 통해 작가가 무엇보다 스타일리스트였으며, 뛰어난 문장가였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플라토노프 문학의 본령을 보여주는 중·단편 소설 일곱 편이 수록돼 있는 이 작품집을 통해 러시아 문학 특유의 철학적 고뇌와 인간적인 깊이, 기상천외한 해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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