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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8월 17일(金)
부패한 아프리카에 혁신 몰고온 비서 출신의 女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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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페기 / 페기린 바텔스·엘리너 허먼 지음, 김미정 옮김 / 세종서적

2008년 8월 어느날 새벽 4시. 전화벨 소리가 페기의 단잠을 깨웠다. ‘못 들은 척하고 있으면 저러다 끊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벨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오투암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됐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돌아온 말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전화를 건 이는 아프리카 가나에 사는 페기의 사촌. 아프리카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부족 마을의 왕이었던 페기의 외삼촌 조지프 왕이 세상을 떠났고, 신성한 의식을 거행한 결과 페기가 후계자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워싱턴DC에 사는 한낱 비서이자 미국 시민이 아프리카의 왕이 된단 말인가.

이 책 ‘여왕 페기’는 워싱턴 주재 가나 대사관에서 비서로 일하던 페기가 주민 7000명이 사는 가나 오투암의 왕이 되기까지의 범상찮은 여정을 시간 순으로 담은 기록이다. 오투암의 왕 페기린 바텔스가 왕위에 오른 처음 두 해 동안 벌어진 실화가 바탕이다. 책에 따르면 가나에서 나고 자란 페기는 그곳을 영영 떠나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인구 8만3000명이 사는 부산한 도시 케이프 코스트에서 아버지 안코마 포스터와 어머니 메리 보르모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에서 부르는 이름, 일명 부족명은 ‘암마’였다. 토요일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철도 엔지니어라는 든든한 직업을 갖고 있던 덕에, 가나에서 유복하게 살았다. 페기는 197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사우스게이트 테크니컬 칼리지에서 요식업을 공부했다. 이후 미국에서 1~2년을 살다가 가나로 돌아와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미식을 만드는 셰프가 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오랜 동창이자 워싱턴 주재 가나 대사인 알렉스 콰이슨색키의 주선으로, 페기는 1979년에 가나 대사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결국 페기는 미국에 정착했다.

“왕으로 추대됐다”는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을 받고 몹시 당혹스러웠던 페기는 결국 왕이 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아프리카 가나로 떠난다. 하지만 취임식을 치르려고 오투암에 도착한 순간 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장밋빛 미래가 아닌 초라하기 그지없는 현실뿐이었다. 왕궁은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아이들은 매일 몇 시간씩 걸어 연못에서 누런 물을 길어다 마시고, 병원은 침대가 부서질 정도로 낙후된 데다 의사는 전무했다. 게다가 왕실 원로들은 오랫동안 주민들의 세금을 착복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페기는 전면적인 개혁을 결심하지만 최대 걸림돌은 남성 우월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전횡을 일삼는 남자 원로들이었다. 페기는 젊고 유능하며 청렴한 인재를 원로로 등용해 과감한 개혁에 나섰다. 기존 원로들의 원성과 반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오투암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하나씩 척결해 나간다.

페기의 이런 행보는 워싱턴포스트에 소개됐고, 이후 페기를 돕는 후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원자들과 척박한 땅에 학교를 짓고, 지하수를 뚫고, 구급차를 들여오며 아프리카에 개혁의 씨앗을 뿌린다. 페기가 일으킨 혁신의 바람은 주민들의 지지와 사랑은 물론, 가나 정부의 마음도 움직였다. 가나 정부도 페기의 행보를 보고 오투암에 도로공사를 실시하기로 계획했다.

‘여왕 페기’는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울러 수도 시설도, 병원과 교육 받을 기회도 변변히 없지만 소박한 축복에 매번 감사하고 신앙과 가족, 친구에게서 기쁨을 찾으려 애쓰는 오투암 주민들의 모습은 문명의 편리함을 당연한 듯 여기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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