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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8월 17일(金)
원효는 왜 늘 당했을까… 삼국유사, 새롭게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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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를 꿈꾼 그들:정민 교수의… / 정민 지음 / 문학의 문학

“왕의 침전에는 매일 날이 저물면 무수한 뱀들이 몰려들었다. 궁인들이 놀라 떨며 몰아내려 했다. 왕이 말했다. ‘과인은 뱀 없이는 편히 잘 수가 없다. 금하지 말라.’ 매번 잘 때마다 혀를 내밀면 온 가슴을 덮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 제43대 임금 희강왕의 손자이자 헌안왕의 사위가 돼 제48대 임금에 오르는 경문왕 응렴(膺廉)에 대한 기록이다. 나이 18세에 화랑을 총지휘하는 국선(國仙)이 된 그는 낭도의 우두머리 격인 범교사(範敎師)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름다운 둘째 공주 대신 못생긴 첫째 공주에게 장가들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응렴이 왕이 된 직후, 그의 침전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록대로 밤마다 침전으로 몰려들어 궁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뱀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민(국어국문학) 한양대 교수는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삼국유사’의 의미를 새롭게 파헤친 책에서 경문왕 주위에 몰려든 뱀 떼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정변에서 그를 지키려는 수호세력, 국선 응렴 시절의 낭도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즉위 초기 경문왕은 이들의 호위 속에서만 비로소 편안한 잠에 들 수 있었을 정도로 불안한 상태였다고 지적한다.

사실 정 교수에 따르면 ‘삼국유사’ 속에서 뱀이 왕권의 수호자로 등장하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가락국기’에서 도적들이 수로왕릉 사당 안에 있는 금과 옥을 훔치려 했을 때 이를 막거나 죽은 뒤 하늘에 올라갔다가 7일 만에 땅에 흩어져 떨어진 박혁거세의 유체(遺體)를 나라 사람이 합장하려 하자 이를 방해해 따로따로 장사 지내게 한 것 모두 큰 뱀의 역할이었다.

특히 정 교수는 “매번 잘 때마다 혀를 내밀면 온 가슴을 덮었다(매침토설 만흉포지·每寢吐舌 滿胸鋪之)”라는 기록과 관련, 독창적인 입장을 개진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번역에선 침전에 몰려든 뱀 떼가 왕이 잠들면 혀를 내밀어서 왕의 배를 덮었다는 뜻으로 풀이해왔다. 하지만 정 교수는 “주어는 뱀이 아니라 왕”이라며 “가슴을 가득 덮을 만큼 길고 넓은 혀는 석가모니의 32가지 신체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장광설(長廣舌)’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길고 넓은 혀(장광설)가 지혜의 상징인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기록은 신라 하대(下代)의 혼란했던 정국 상황에서 경문왕이 자신의 지혜와 경륜을 감춰두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 교수는 해석한다.

그동안 한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소개한 ‘한시미학 산책’과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 조선 지식인과 18세기 문화를 소개하는 저서 등을 펴냈던 정 교수가 이번에는 ‘삼국유사’를 들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삼국유사’를 ‘상상력의 보물창고’이자 ‘우리 문화의 비밀을 푸는 집코드(우편번호)’라고 정의한 정 교수는 11개 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다양한 새로운 해석을 펼쳐보이고 있다.

가령 정 교수는 도깨비 무리를 부리는 비형랑이 당시 왕(진평왕)의 사촌인 ‘용춘’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펴며 서역에서 건너온 밀본의 정체와 함께 국난을 막아낸 문두루 비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불국토의 중심축인 황룡사 9층탑과 장륙존상의 의미, 가장 강자였기에 당해야 했던 역설적인 의미를 살펴본 ‘원효는 왜 항상 당하기만 했을까?’, 통일신라 이후 통일 영웅의 주역인 화랑의 말년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죽지랑 개망신 사건’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술에 전 미치광이 스님으로 불리다가 만년에 항사사(지금의 경북 포항 오어사)에 머물렀던 혜공 스님과 대안 스님, 원효 스님 등 거리로 뛰쳐나와 민중들과 호흡했던 승려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현재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정 교수는 머리말에서 “‘삼국유사’는 허튼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해석이 어려운 것은 해독의 코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단절을 이어 맥락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진작가 변명환 씨가 원고 속 현장을 찾아가 촬영한 40여 점의 사진이 실려 있어 글의 이해를 돕는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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