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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8월 31일(金)
세계를 호령했던 칭기스칸… 그의 딸들이 제국을 지켰다
아들들에 의해 잘려나간 ‘몽골비사’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 잭 웨더포드 지음, 함규진 옮김 / 책과함께

“내가 정벌에 나서게 되면 너는 내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려고 하면 너는 나의 발 빠른 말이 되어야 해.”

칭기스칸이 딸에게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딸 알라카이 베키에게 “너의 현명한 마음보다 더 훌륭한 친구는 없다”면서 “너는 많은 것들에 의존할 수 있겠지만, 너 자신만큼 믿을 만한 존재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칭기스칸의 어머니와 아내. 그의 딸들에 대해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칭기스칸이 영토 확장에 매진하는 동안 정복한 영토를 다스리며 제국을 유지한 것은 그의 딸들이었다. 이들은 제국을 통치하며 언어와 관습이 제각각이었던 제국에 체계를 마련했다. 때로는 아버지의 정복 전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나 칭기스칸의 사후에 방탕하고 무능했던 아들들이 누이들의 영토를 탐내 그녀들을 숙청하면서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몽골 왕조사인 ‘몽골비사’에서 잘려나갔다.

몽골 족은 은밀하게 정부를 운영하며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은 데다가, 공식적인 기록까지 검열자들의 손을 거친 탓에 칭기스칸의 딸들이 모두 몇 명인지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기록의 소실에도 포기하지 않고, 딸들의 이야기를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굴절된 공식 기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몽골 민요, 설화, 현지인 인터뷰 등을 통해 퍼즐을 맞춰 나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몽골 제국의 역사에서 칭기스칸의 여자 후손들이 해낸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우선, 그들은 ‘결혼 동맹’을 통해 제국의 운영에 참여했다. 당시의 결혼 동맹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략 결혼과 달랐다. 그녀들은 결혼을 통해 남편이 속한 부족의 지배자가 되어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관철시켰다.

한 예로 칭기스칸의 딸 알라카이를 보자. 당시 칭기스칸은 고비 사막 때문에 중국을 정복할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그러나 알라카이가 고비 사막의 남쪽에 있는 옹구드 족에게 시집가 그 지역을 병참기지로 키워내면서 칭기스칸은 중국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혼 동맹의 예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바로 원나라 공주와 고려 왕자들의 결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몽골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가 고려였다. 몽골 족은 고려를 무지개 뜨는 나라 혹은 사위 나라라고 불렀다.… 몽골 족은 고려 왕실과 통혼을 했고 때때로 고려 왕자가 몽골 궁중에 와서 몽골 족의 언어와 관습을 배우기도 했다. 다른 사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고려는 전통적인 법률, 행정 구조, 조세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칭기스칸 시절의 구레겐(공주의 남편)과는 다르게, 고려의 사위들은 오지의 전장에 파견되지 않았다. … 고려는 제일 마지막으로 사위국이 된 나라였으나 이 지위를 원나라가 멸망한 1368년까지 유지했다.”

저자는 칭기스칸과 그의 딸들이 일궈낸 제국의 탄생기뿐 아니라 아들들에 의해 제국이 쇠락하는 과정도 다루고 있다. 칭기스칸 사후 뒤를 이어 대칸이 된 아들들은 누이들을 숙청하고 그녀들의 영토를 빼앗았다. 하지만 그 공백을 대신해 칭기스칸의 며느리들이 정치 일선에 등장한다. 동맹 관계에 따라 칭기스칸의 가문으로 시집온 그녀들은 주색잡기에 빠진 남편들을 대신해 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저자는 칭기스칸의 현신(現身)이라고 불렸던 만두하이 왕비가 15세기에 몽골을 다시 통합하는 이야기도 소개한다. ‘몽골비사’에서 잘려나간 페이지 속 이야기들을 700년 만에 되살려낸 저자의 학문적 노력과 맛깔스러운 문장, 짜임새 있는 구성 등이 돋보이는 책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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