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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9월 07일(金)
‘의미있거나… 어이없거나…’ 역사에 기록된 美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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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 L 레너드 케스터·사이먼 정 지음/현암사

1980년대 초반 인기 TV외화시리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The Paper Chase)’을 기억하는지. 원조 ‘미드(미국 드라마)’라 할 만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하버드 법대생들이었지만, 주인공보다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등장인물이 전설적인 법대 교수 ‘킹스필드’였다. “하트군, 이 판례에 대해 말해보겠나.” 킹스필드 교수는 강단에서 난마처럼 얽힌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제시하면서 사건의 요지와 판결의미를 학생들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드라마는 미국 대학생들의 꿈과 사랑, 학문적 열정을 그렸지만 수업장면에서 소개되는 갖가지 사건의 판례와 법리다툼 역시 이 못지않게 흥미진진했다.

책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가운데 치열한 법리 논쟁이 벌어졌던 사건이나 역사를 바꾼 의미있는 판결을 골라 소개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하급법원을 거쳐 올라온 각종 사건을 심사하고 판결을 내리는 미국 사법부의 최고기관. 연방대법원에 올라오는 청원은 연간 1만여 건이지만 이중 심의를 위해 선택되는 ‘중대한’ 사건은 한 해를 통틀어 100건을 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판결 중에서 가장 의미있거나 논쟁이 됐던 판결 31건을 골라 다루고 있다. 골라낸 것들이 다 기념비적인 명판결만은 아니다. 대법관의 다수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고, 심지어 추악한 인종주의의 모습을 드러내 두고두고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판결도 있다.

법정의 판결과 법리논쟁 등을 담은 책이라 내용이 자칫 딱딱하거나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책은 연방대법원이 판결한 31개 판결의 사건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사건의 목록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첫 번째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다룬 판결. 정치적 시위 도중 성조기를 불태운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부터 총기소유 제한, 음란물의 판단기준, 안락사 허용 등에 대한 판결이 소개된다.

이어 종교와 양심의 문제에 대한 판결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일부다처제 유지가 가능한지, 충성서약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교사의 해임이 정당한지, 인종차별단체인 KKK단도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소개한다.

법의 영역에서 늘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사형제도는 따로 한 부분으로 묶였고, 대통령과 연방법원 사이에 벌어진 유명한 사건들도 별도로 정리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은 판결만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각 판결마다 프롤로그, 판결문, 반대의견, 에필로그로 정리해 놓았다. 프롤로그에서는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소송의 과정이나 당사자들의 입장 등을 요약해서 소개해 주고, 판결문과 반대의견에서는 판결에 이르게 되는 논리적 사고과정을 들여다본다.

이어 판결 이후의 에피소드와 판결이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에필로그에 덧붙인다. 사건의 논점이 잘 정리돼 있는데다 판결문과 소수의견에서 드러나는 균형잡힌 논리와 고도의 지성, 정교한 문장력 등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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