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프런티어>경험·섬세함 세계 최고… 국내 최다 8000例 수술 기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센터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대장암 로봇수술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조종석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 김연수 기자 nyskim@munhwa.com

눈앞에 다가온 100세 건강 장수 시대. 문화일보는 지난 1월부터 9개월에 걸쳐 ‘메디컬 프런티어’를 통해 국민들이 100세까지 건강한 삶을 위해 극복해야 할 뇌졸중과 대장암, 당뇨병, 크론병 등 각종 중증 만성질환과 희귀질환에 대해 소개해 왔다. 4부에서는 ‘최고의 전문 센터를 찾아서’라는 부제 아래, 지금까지 소개했던 질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전문 센터들을 꼽아 우수한 의료진의 수술 기법과 센터의 특징, 운영 노하우 등을 전하려 한다. 환자와 환자 가족, 일반인들이 질환을 극복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 미국과 일본, 이탈리아, 쿠웨이트, 페루 등 전 세계 15개국에서 온 100여 명의 의사가 강당 앞에 펼쳐진 스크린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스크린 화면에는 김남규 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가 수술실에서 로봇을 통해 대장암 환자의 암세포를 제거하는 모습이 생중계(일명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됐다. 환자의 배에는 작은 4개의 구멍이 뚫려, 구멍마다 지름 35㎜의 로봇 팔이 들어가 있었다. 김 교수가 수술실 구석에 있는 조종석에 앉아 마치 직접 수술을 하듯 양손으로 조이스틱을 운용하자 로봇은 김 교수의 움직임에 따라 환자의 배 속에서 지방을 헤쳐 내며 암세포를 찾아내 제거하기 시작했다. 장장 두 시간 동안 펼쳐진 라이브 서저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홍콩에서 온 외과 의사 사이몬 응(41) 씨는 “김 교수의 정교한 로봇 움직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로봇수술의 종주국은 미국이다. 수술 로봇인 ‘다빈치’는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사가 만들었다. 지금도 수술 로봇 제작 기술을 가진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로봇수술을 처음 시작한 곳도 미국이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더 주목받고 있는 로봇수술 강국이다. 로봇은 미국산이나 이 로봇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의사들은 한국에 있다. 한국 의사들은 다른 국가의 의사들보다 수술 경험이 많고 손 움직임이 섬세하다. 이를 바탕으로 표준화된 수술 기법도 개발해 전 세계의 의사들이 수술 기법을 배우기 위해 매년 한국을 방문한다.

그 중심에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센터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센터는 지난 2005년 7월 한국 최초로 로봇수술을 시도한 이래 위암, 전립선암, 갑상선암 등을 중심으로 40여 개 질환에 대해 연간 1000여 건 이상의 수술을 집도한다. 현재까지 국내 최다인 8000례의 수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센터에는 5대의 수술 로봇이 있으며, 무려 40여 명의 의사가 어렵지 않게 로봇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센터는 이 같은 수술 경험과 수술 기법을 인정받아 2008년부터 제조사인 인튜이티브 서지컬사의 공식 표준 매뉴얼로 인정돼 그 기술이 전 세계로 보급되고 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사가 공식 표준 매뉴얼로 인정한 수술 기법은 5개뿐인데 이 중 3개를 세브란스병원이 만들었다.

또한 이 로봇수술센터는 홍콩, 일본과 함께 아시아 공식 트레이닝(수술법 교육)센터로 지정돼 국내외 의료진의 로봇수술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 열린 ‘연세 세브란스 다빈치 라이브’ 심포지엄도 교육의 일환으로, 올해로 6회째를 맞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25개국 600명의 의료진이 센터를 방문해 로봇수술법을 배워 갔다.

로봇수술은 의사가 수술대와 멀리 떨어진 조종석에 앉아 내시경 화면을 보면서 조이스틱을 이용해 환자 배 속으로 들어간 로봇 팔을 작동시켜 원격수술을 하는 것이다. 과거 보편적인 수술법이었던 개복수술(배를 열어 수술하는 것)은 신체에 상처가 남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강한 것이 복강경수술인데, 복강경은 환자의 배에 구멍을 뚫은 뒤 내시경과 기구를 통해 수술을 해 상처를 최소화했다.

로봇수술은 발전된 복강경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구멍 안에 기구 대신 로봇 팔이 들어가 의사의 조종에 따라 수술을 시행한다.

의료계는 완벽한 수술을 위해서 넓은 시야와 정확한 수술 부위의 노출, 동작의 완벽한 제어 등 세 가지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고 말한다. 로봇수술은 기존 개복수술이나 복강경수술에 비해 이 세 가지에 유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복강경수술은 내시경을 통해 수술 부위를 확대한 화상을 구현함으로써 개복술에 비해 더 정확한 시야 확보가 가능케 했다. 로봇수술은 여기에 더해 화상을 3차원(3D)으로 구현해냄으로써 원근감 면에서 더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개복술은 2명 이상, 복강경수술은 1명 정도의 보조 수술자가 필요한 데 반해 로봇수술은 보조 수술자의 역할마저 미미하다. 복강경수술에서 보조 수술자가 수행하던 동작을 로봇 스스로 제어한다. 의사소통의 오류나 오해로 인한 실수가 적고 효율적인 장기 노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로봇수술의 가장 큰 장점은 동작의 완벽한 제어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나이가 듦에 따라 체력 저하와 손 떨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로봇은 손 떨림이 없어 아주 작은 혈관이나 구조물에 대해 오차 없는 수술이 가능하다. 또한 로봇 팔은 540도까지 움직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사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위까지 수술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로봇수술은 전립선암이나 직장암 수술 등 특히 정교함이 필요한 수술에 적합하다. 전립선암의 경우 배변과 성기능 보존을 위해 신경기능을 보존하면서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데 로봇수술은 시야 확보가 좋고 절개도 정교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개복술에 비해 상처가 적어 회복이 빠르다.

문제는 비용이다. 로봇수술은 현재 비급여이기 때문에 암의 병기나 수술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700만~1500만 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 개복술에 비해 5배, 복강경수술에 비해 2~2.5배 정도 비싸다. 수술 로봇의 가격이 대당 40억 원에 육박하고 소모 부품 가격도 상당해 수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 로봇수술의 비용 감소와 대중화를 위해서는 현재 미국에서 독점하고 있는 수술 로봇의 국산화가 시급한 현실이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