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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09월 21일(金)
끝없는 변신으로 존재감 과시하는 팜 파탈의 본질은?
고대에선 여신·여왕으로… 중세땐 매혹적인 마녀로… 현대에선 은막의 스타로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유혹하는 여성들, 팜 파탈 / 요아힘 나겔 지음, 송소민 옮김 /예경

1917년 10월15일. 스파이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처형된 마타하리. 1905년 파리 몽마르트르에 개장한 클럽 물랭루주에 나타난 마타하리는 탁월한 미모와 스트립쇼나 다름없는 현란한 발리춤으로 이름을 떨쳤다. 올리브빛 피부, 커다란 갈색 눈, 검은 머리카락…. 자바인을 자처한 그의 이국적인 외모는 뭇 남성들을 달아오르게 했다. 프로이센의 황태자, 네덜란드 총리, 프랑스 귀족 등 고위층 인사들이 그의 매력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팜 파탈은 ‘불가항력적인 미모와 관능으로 남성을 유혹해 결국 파멸로 이끄는 요부 또는 악녀’를 뜻하는 개념.

이 책 ‘유혹하는 여성들, 팜 파탈’은 그림과 문학, 영화와 철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팜 파탈의 연대기다. 기존 서적들처럼 살로메·델릴라·헬레나 같은 유명한 팜 파탈의 그림에 국한하지 않고, 문학과 당대의 비평·보도기사 등 다양한 텍스트를 인용해 팜 파탈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고대에는 여신이나 여왕으로, 중세에는 마녀로, 낭만주의에서는 카르멘과 같은 정열적 캐릭터로, 현대에서는 은막의 스타로 팜 파탈은 존재해왔다. 오늘날에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팜 파탈이 자의식 강하고 독립적인 현대여성의 역할모델로 떠오른 것이다. 책은 이처럼 끝없는 변신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팜 파탈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책은 유대신화에 등장하는 이브보다 앞서는 인류 최초의 여자로 아담의 첫 번째 부인인 릴리트부터 시작한다. 문헌에서 릴리트는 사악한 뱀과 동일시 되기도 하고 무서운 영아살해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괴테의 ‘파우스트’ 1부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에 나오는 마녀와 악마 중 하나가 되고, 파우스트에게 버림받고 절망으로 인해 신생아를 살해한 그레첸의 모형으로도 등장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릴리트는 신에 대한 반항을 통해 얻은 초인적인 특성은 잃었다. 문화사가인 저자는 그러나 릴리트는 자의식 있고 유혹적인 팜 파탈의 원형으로 미술과 문학에서 언제나 살아 있다고 말한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단테 게이브리얼 로세티는 1868년 ‘레이디 릴리트’로 그를 칭송하고, 이 그림에 유명한 소네트까지 붙여 놓았다. ‘그녀는 아직도 젊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네, 세상은 오래 전에 늙어버렸는데도/ 자신 속에 침잠해서/ 그리고 남자들은 그녀의 찬란한 그물에 끌려들어가/ 몸과 마음과 생명까지 사로잡힌다네/ 장미와 양귀비가 그녀의 꽃이라네/ 오, 릴리트여, 그대 향기의 올가미와 부드러운 키스의 강에서/ 과연 그 누가 빠져나올 수 있으리오….’

19세기 말의 상징주의 예술가들은 기존의 신화와 픽션들, 그리고 남성의 환상을 총동원하며 악마적인 극단적 팜 파탈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이런 팜 파탈의 유행이 정점에 이를 즈음부터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같은 현실의 팜 파탈, 예술을 통해 여성의 매혹과 위협을 구현한 이들의 이름이 문화사에 기록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등장은, 당시 서서히 나타나고 있던 여성의 사회 진출 및 권리 요구와도 무관치 않다. 1865년 마네가 그려 스캔들을 일으킨 자의식 강한 매춘부 ‘올랭피아’의 그림은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생업의 권리를 쟁취한 여성들이 어느새 도시의 주역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법. 여성들의 목소리가 수면에 올라오면서 특히 지식인과 예술가 사이에서 여성 혐오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신분석학과 쇼펜하우어·니체의 철학을 근거로, 여성의 열등성과 그들이 남성에게 미치는 치명적 영향력에 대한 그럴싸한 이론이 난무했다. 여성 혐오의 시대는 위엄이나 아름다움보다 부도덕성·야수성·충동성이 강조된 팜 파탈 캐릭터들을 낳았다. 음탕한 여인의 전형이며, 육욕의 화신이라고도 할 유부녀 ‘룰루’나 중년 남성을 의도적으로 유혹하는 소녀 롤리타 등이 그러하다.

20세기로 넘어오며 사진과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가 출현해 문학과 미술보다 더 큰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한다. 이에 따라 저자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림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간다. 그레타 가르보, 루이즈 브룩스 같은 무성영화의 ‘요부’들과 로렌 바콜, 리타 헤이워스 같은 누아르 영화의 위험한 미녀들을 거쳐, 누벨바그 영화는 좀 더 자연스럽고 다층적이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를 간직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에서부터 약 50년이 지난 ‘타임 투 리브’(2005)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관능을 뿜어내는 배우 잔 모로가 그 예이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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