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보기

깊은 여행 / 토니 히스 지음, 김양희 옮김 / 21세기 북스

늘 다니던 익숙한 거리에서,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문득 주위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라면 그냥 봐 넘길 사소한 것들의 의미가 새삼스레 확장되면서 어떤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듯한 순간 말이다.

저자도 그랬다. 어느 날 우편물을 보내고 동네 베이글 가게에서 커피를 사오려고 집을 나섰고, 그 길 위에서 이런 순간을 만났다. 늘 길 모퉁이에 서 있던 정물과 같았던 우편함을 그날 처음으로 자세히 바라보게 됐다. 그는 우체통의 내부 공간이 고작 몇 뼘 정도에 불과하지만 세계 곳곳에 보내는 수백만 명의 에너지의 흐름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있으며, 일단 무엇인가를 넣으면 되돌릴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게 됐다. 그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물의 의미를 새로 깨닫게 되는 경험은 그를 풍요롭게 했고, 생기에 넘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이런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일컬어 ‘깊은 여행’이라고 규정한다. 여행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보자. ‘상품과 식량을 곳곳으로 옮겨주고 아이디어와 기술혁신을 전파하며, 결코 만나지 못했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주고, 인류의 발길이 닿는 곳을 넓혀준다.’ 이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각 개인에게 여행은 어떤 효용성을 지닐까. 저자는 덧붙인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마음의 가장 내밀한 차원을 복원시키면서 정신의 날개를 들어 올리는 발사대이자 투석기다.’

저자가 집 앞 우체통에서 만난 것이 바로 ‘마음의 내밀한 차원의 복원’ 혹은 ‘정신을 들어 올리는 발사대’인 것이다. 비행기나 차를 타지 않았고, 동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감흥, 효용과 정면으로 만난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이동이 없는 여행’을 꿈꾸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명 여행작가들의 책에 등장하는 글을 꺼내기도 하고, 자신과 동행했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가 하면, 자신이 겪은 사건까지 총동원해 이런 경험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의 주택가에서 송골매의 먹이사냥 모습을 보고 1만 년 전 후빙기를 상상했던 경험이나, 미국의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와 있다고 상상했을 때 느껴지는 낯선 느낌, 지하철 옆자리 승객과 함께 앉게 된 우연이야말로 얼마나 희귀하고 기가 막힌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 등에 대해 설명한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공상 하나. 익숙한 공간에서 ‘여행자의 낯선 시선’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세상은 좋아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신기해지고, 익숙하게 여겨진 것들조차 모두 새삼스레 아름다워질 것이니. 게다가 예민하게 다듬어진 몸과 마음의 촉각으로 삶의 즐거움까지 담뿍 빨아들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