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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10월 19일(金)
과학을 ‘주술’로 격하시킨 ‘인간의 욕망’
英 심령주의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불멸화위원회 /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인간도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자연 선택의 우연한 결과일 뿐이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이 함축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인간이 세상 만물의 질서에서 어떤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대 사람들은 혼돈에 빠졌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구상에서 언젠가 영원히 사라져 버릴 존재라면 삶의 가치나 이상 등은 무의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삶에 더욱 집착했고, 죽음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정복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 책 ‘불멸화위원회’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과학으로 죽음을 피하려고 했던 두 가지 시도에 대한 이야기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저명인사들 사이에는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영혼(개인성)이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유행했던 교령회(交靈會)는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던 열정적이고 절박한 노력이었다. 케임브리지의 철학자 헨리 시지윅,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이론을 알아냈으나 훗날 심령주의자가 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영국 총리와 ‘심령연구학회’ 회장을 지낸 아서 밸푸어 등이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이런 노력에 빠져들었다.

영국의 지식인들은 유령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아쓰는 ‘자동 기술’과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자동 기술된 문서를 대조해 사후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교차 통신’에 몰두했다. 월리스가 심령주의를 ‘전적으로 사실에만 기초를 둔 과학’이라며 옹호했던 건, 다윈 이후 세계가 재주술화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러시아 지식인 사이에서도 죽음에 맞서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볼셰비키 지식인 분파인 건신(建神)주의자였다. 막심 고리키를 비롯해 소비에트 정권에서 인민계몽 위원장으로 임명된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불멸화위원회’를 만들어 레닌의 사체를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한 핵심인물이었던 레오니드 크라신 등이었다. 이들은 과학의 힘으로 아예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학의 힘을 완전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죽음을 인위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이들에게 진화는 목적 없는 과정이 아니라 진보를 향해 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성취하려면 먼저 인간을 새로운 인간형으로 개조해야 했고, 이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저자는 두 경우 모두 과학과 종교, 주술의 경계는 흐릿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며 책을 통해 불멸을 바라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부조리, 주술적 과학의 허상을 꼬집는다.

그는 “인간을 필멸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에서 지식의 힘이 소환됐다”며 “과학은 과학에 반(反)하여 쓰였고 마법으로 가는 통로가 됐다”고 일갈한다.

저자는 반(反)휴머니즘 사상을 집약한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유토피아 정치 기획을 비판한 ‘추악한 동맹’ 등을 통해 우리에게 낯익은 존 그레이 전 런던정경대학(LSE) 교수. 저자에 따르면 과학을 통해 불멸을 추구하는 것은 죽음을 격퇴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우연성과 신비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일 뿐이다. 여기서 우연성은 인간이 항상 운명과 우연에 지배받으리라는 것을, 신비성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들에 항상 둘러싸여 있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지식을 이용해서 ‘인간 동물’이 ‘인간 조건’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사례로 레이 커즈와일을 든다. 커즈와일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특이점이 온다’는 저작을 통해 지식 성장이 세계를 변형시킬 정도로 가속화되는 시기가 왔다고 주장했다. 수확 가속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전제하면 인공지능이 그것을 발명한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커즈와일이 제시한 특이점은 최근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이뤄진 뒤에야 도달할 수 있는 상태지만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며 “커즈와일이 생각하는 가상의 내세는 심령연구자들이 생각한 내세의 하이테크 버전이고, 우주에서도 진화가 가속화된다는 생각은 진화가 내세에서도 계속 이뤄진다는 빅토리아시대 프레더릭 마이어스의 꿈이 업데이트된 버전이다”고 말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지식이 성장한다고 해도 인간을 인간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나게 해주진 못한다는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저자가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과학은 인류가 자신의 운명을 향상시키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환경을 훼손한다. 과학은 죽음을 극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대량 살상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기술들을 만들어 낸다. 이 중 어느 것도 과학의 오류는 아니다. 단지 과학이 마법이 아님을 보여줄 뿐이다. 지식의 성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의 법위를 확장시켜준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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