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손연재 날개 꺾고 ‘족쇄’… 협회 왜 이러나

선수는 컸지만, 국내 규정과 잣대는 커진 선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선수와 협회 사이에 낀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사의 갈등도 문제를 부추기고 있다. 자유로운 신분으로 큰 무대에서 뛰기를 갈망하는 여자배구 거포 김연경(24·왼쪽 사진)은 국내 규정에 발이 묶여 터키 페네르바체의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에서 리듬체조 요정으로 유명세를 치른 손연재(18·세종고·오른쪽)는 체조협회가 출전을 불허하는 바람에 이탈리아 세리에A 챔피언십 출전이 좌절됐다.

배구協, 김연경 이적문제로 벼랑끝 대치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김연경은 한 시즌을 쉬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협회’의 손마저 떠나 정치권과 정부가 개입하게 됐다. 협회는 주도권도 뺏기고 그저 ‘허탈하다’는 반응뿐이다. 김연경과 흥국생명과의 중재에 나섰던 대한배구협회 박성민 부회장은 22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늘 오후 2시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 흥국 구단주가 회동을 해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 회동에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김연경을 돕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합의문 작성에 김연경은 배구협회의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했다고 하는 데, 참담한 심정이다”라며 “배구협회는 관리하는 입장이지 어떤 이권을 보고 한쪽 편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허탈하다”고 말했다. 협회의 무기력함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한편 흥국생명은 이날 김연경 기자회견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고 “김연경 측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원칙에 따라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구단, 배구협회와 성의 있는 대화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흥국 측은 “(에이전시가) 슈퍼스타에 대한 국민의 성원을 등에 업고 국내 규정을 무시한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 배구를 이끌어갈 선수의 미래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그 와중에 김연경은 선수생활의 공백은 물론 위기에까지 처했다. 이적동의서 발급이 늦어지면 김연경은 자칫 한 시즌을 쉬게 될지 모른다. 또 리그 참가를 못해 연봉이 대폭 깎일 수도 있다. 김연경 측은 만일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시즌을 쉬더라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연경은 지난 19일 국회로 달려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 협회나 구단에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협회인가’라는 질문이 안 나올 수 없다.

체조協, 손연재 伊대회 출전 취소 일방 통보

이탈리아 세리에A 챔피언십 참가를 놓고 손연재와 견해차를 드러낸 대한체조협회가 끝내 손연재를 이 대회에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한체조협회는 21일 “기술·경기강화위원회와 국가대표 코치 등이 참석한 합동회의(20일)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챔피언십(11월3일 개막)에 손연재를 출전시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체조협회는 이번 대회가 국제체조연맹(FIG)이나 이탈리아 협회가 주관하는 공식 대회가 아닌 클럽 초청대회로, 손연재의 몸 상태와 훈련량 등을 고려하면 이 시점에서 대회에 참가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내년부터 리듬체조 규정이 대폭 바뀜에 따라 부상을 치료하고 체중을 관리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규정에 따라 손연재에게 월 60만 원의 훈련비만을 지원할 수 있었던 협회는 기업 후원금과 광고출연료로 월 3000만 원에 달한다는 러시아 전지훈련 비용을 대고 협회 마케팅에도 큰 도움을 준 손연재의 매니지먼트사 IB스포츠와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사이가 틀어져 이제부터 직접 관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협회가 추천한 일본 이온컵 대회에 손연재가 부상을 이유로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28일부터 10월3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이 대회는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만큼 권위를 인정받던 공인 대회지만 손연재는 10월6∼7일 열렸던 LG 갈라쇼 준비를 위해 출전하지 않았다. 협회가 가라는 대회는 안 가고, 돈 안 되면 안 한다는 생각이 든 협회는 이제야 ‘선수를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매니지먼트사에서 이제 선수를 보호하겠다’고 칼을 빼든 것이다.

손연재측은 협회와 대립하는 모양새는 가급적 피하고 싶어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하고 있다. 그 와중에 김지희 리듬체조 대표팀 코치도 “훈련과 통제에 한계를 느낀다”는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동윤 선임기자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