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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10월 26일(金)
‘화이트칼라’ 무너지는 꿈… ‘장기 자산’서 ‘단기 비용’ 전락
저자, 구직 단계부터 직접 체험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희망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명불허전이다. ‘긍정의 배신’과 ‘노동의 배신’을 통해 각각 ‘행복전도사’들이 퍼트리는 긍정주의의 허상과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워킹푸어의 실상을 파헤친 저자가 이번엔 무너져 가는 중산층의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라는 부제는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책은 생물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가 60대 초반의 나이에 기업에 몸 바쳐 충성하고도 버려지는 화이트칼라의 세계에 뛰어들어 쓴 체험형 현장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화이트칼라들이 정말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있나, 그런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이 정말로 그렇게 안 좋다면 왜 저항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일까라는 세 가지 의문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저자가 프로젝트를 시작한 2003년, 미국의 실업률은 5.9%였고, 이 중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20%로 160만 명에 달했다. 높은 성과를 낸 사람들도 해고됐고, 사양산업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구직 프로젝트를 세우고 최선을 다한다.

우선 연봉 5만 달러 이상에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세우고 결혼 전 성(姓)을 되살려 ‘바버라 알렉산더’로 개명해 합법적인 신분을 마련한다. 돈을 들여 코칭을 받는가 하면 네트워킹과 구직 훈련을 위해 천 리 길도 멀다 않고 달려갔다. 외모 변신을 꾀했고, 무뚝뚝한 천성을 ‘호감이 가고 팀플레이에 적합한’ 성격으로 순화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구직자는 철저하게 자신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절감한다.

커리어 코치들이 인터넷 검색보다 훨씬 나은 시간 활용법으로 추천하는 네트워킹 행사에 바지런하게 쫓아다닌 저자는 그러나 실망감만 느낄 뿐이다. 네트워킹 행사가 많이 열리는 초대형 교회는 실직도 구직도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고 설명하고, 현실보다는 구직자 개인의 태도를 바꾸는 쪽에 집중하게 만든다.

저자는 “네트워킹이 실업자들이 함께 모여 연대감을 형성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네트워킹의 본질 그 자체가 동료 구직자를 향한 연대감의 싹을 짓밟고, 동료 구직자는 기껏해야 연락처나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거나 최악의 경우 경쟁자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기업이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운영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비용 절감의 일차 대상이 된다. 또 최고경영자(CEO)가 그토록 선호하는 인수·합병의 결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필연적으로 정리해고가 뒤따른다. 주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운사이징도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저자는 이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거칠게 표현하면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한 셈이다”며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야 전진할 수 있다”고 꼬집는다.

책에 소개된 한 경영컨설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오늘날 미국의 화이트칼라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전에 조직은 사람을 키우고 발전시켜야 할 장기 자산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줄여야 할 단기 경비로 본다. 사람을 생산 방정식의 한 가지 변수에 불과한 ‘물건’으로 여긴다. 손익 숫자가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물건’은 언제든 내버릴 수 있다.”

저자는 화이트칼라들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가 일자리의 안정성 이상으로 존엄성의 희생이라고 지적한다. “화이트칼라가 사는 세상은 음모와 정체불명의 기대치, 조작과 심리 게임이 횡행하는 곳이며, 성격과 태도 같은 자기 표현이 업무 수행 능력보다 더 중요한 곳이다.” 정장을 빼입은 화이트칼라가 육체노동자를 얕볼지 모르지만 사실은 육체노동자들보다 훨씬 강압적인 심리적 요구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미국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장년 화이트칼라의 상시 정리해고는 우리에게도 일상이 됐고, 앞으로 개선될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는 “언제든 처분 가능한, 그리고 이미 처분당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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