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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2년 11월 02일(金)
해방 직후 한국인 눈에 비친 아시아
탈식민 연대의식 점점 시들고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슬픈 아시아-한국 지식인의 아시아 기행(1945∼1966) / 장세진 지음 / 푸른 역사

우리에게 아시아는 무엇인가. 피식민지의 제2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파월장병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한국 근·현대사에서 아시아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가. 이 같은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책의 출발점은 1945년 해방 직후다. 당시 한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경험에는 피식민지인으로 살아야했던 과거의 잔영이 진하게 남아 있다. 책의 종점은 소제목 ‘아, 베트남’에서 드러나듯 1960년 후반 파월의 경험이다. 참으로 굴곡 많았던, 한국인의 대(對) 아시아 체험사를 책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선, 해방 직후 아시아로 나갔던 이들의 충격적인 경험을 보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거 독립한 아시아 신생국가들이 국가 건설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당시 여행자들의 주요 미션 중 하나였다.

미래의 청사진을 기획하며 설렘 속에 떠난 그들은 그러나 아시아 각지에서 ‘조선인들의 과거’를 기억하는 적대적인 시선과 가장 먼저 부딪쳐야 했다. 1947년 4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범아세아대회에 참가한 고황경의 기록이다.

“저녁 후에 호텔 라비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노라니까 마래(馬來·말레이시아)에서 온 대표자가 먼저 인사를 한다. 여러 가지 대회의 유쾌한 경험을 다 이야기한 후 전쟁 중에 일병(日兵)이 마래에 왔을 때에 얼마나 조선 사람이 일병의 부하가 되어서 잔혹한 행동을 많이 했다는 것과 자기는 마래에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까닭에 많은 주목과 시달림을 받는 중에도 전 가족이 붙들려 조선 사람에게 무지한 고문을 당하였다는 말을 한다.(…) 온 세상이 조선을 몰라주는데 혹시 조선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런 악(惡)한 인상을 통하여만 알려졌으니 참으로 불행이라는 감이 전기와 같이 머리 속을 찌르르하게 하였다.”(고황경, ‘인도기행’에서)

일제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에 충실했던 조선인들은 아시아의 이웃들과 새롭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웃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당시 여행자들은 아시아라는 익숙한 단어 속에 얼마나 이질적이고 다양한 민족들이 각자의 사연을 간직하고 살아왔는지 현지 체험을 통해 비로소 실감했다.

그러나 독립을 맞이한 아시아 지역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제국주의의 지배는 끝났지만, 미국과 소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전지구적 냉전체제가 아시아를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 신생국들의 동질성과 탈식민의 연대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희미해져 갔다. 결국 아시아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강력한 반공 프레임에 갇히게 되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경험을 겪어야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엘리트들이 남긴 아시아 여행기록은 점차 역내의 집단적인 반공 체제를 성사시키기 위한 일정으로 채워져 갔다. 책에 소개된 기행문들은 1966년의 기록에서 끝난다. 이는 해방 이후 한국의 아시아 인식에서 1차 베트남 파병(1965년)이라는 사건이 갖는 상징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인종적 동질성, 지역적 인접성, 식민지 경험이라는 역사적 공통성에 기초한 아시아라는 연대 의식이 어느새 희미해져 버리고, 그 대신 전지구적 냉전 서사가 한국의 공론장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게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 보여주고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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