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10.19 목요일
전광판
Hot Click
정보통신
[경제] My new life 게재 일자 : 2012년 11월 07일(水)
총이 정말 싫었던 사격왕… 이젠 年매출 100억대 ‘IT 정조준’
‘사격 금메달리스트’서 IT업체 대표로… 이은철씨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이은철 인텔라 대표가 지난 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사무실에서 무선통신 시스템에 들어가는 알고리즘(컴퓨터가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한 단계적 방법) 기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성남 =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총이 죽도록 싫었던 사격선수.’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90년 모스크바 세계사격선수권대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석권했던 ‘사격왕’ 이은철 선수. 한국 대표팀 성적이 떨어져 은퇴를 번복해야 했을 정도였던 ‘총잡이’ 이은철 선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총이 정말 싫었다”며 선수 시절 이야기를 풀었다.

지금 사람들은 ‘사격’하면 2012 런던올림픽 사격 2관왕 진종오 선수를 떠올리겠지만, 80∼90년대를 지나온 ‘3040세대’들은 ‘이은철’이란 이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사격 불모지였던 한국에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던 이은철 선수가 포효하던 ‘영광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통신부품 제조사 인텔라 사무실에서 만난 이은철 ‘선수’는 이제는 ‘사장님’이 돼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실패하고 은퇴를 했어요. 그때는 총이 말 그대로 정말 꼴도 보기 싫었죠. 이미 사격선수로서 인생 목표였던 금메달(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딴 뒤였기 때문에 목표의식이 사라진 겁니다.” 이은철 인텔라 대표의 말은 담담했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87년 전국체전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사격계에선 당연히 제가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88년 중반부터 기록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죠. 태어나서 23년 만에 처음으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셔봤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자극이 됐다. 잠시 쉬라고 휴가를 주면 절에 들어가 이미지 트레이닝과 체력훈련에 열중했다. 함께 훈련하던 친구와 영화 보러 간 것이 그가 했던 ‘놀이’의 전부였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니 오히려 슬럼프가 찾아왔다. 인생의 목표가 없어진 것이다. 이은철 ‘선수’는 “김연아 선수의 방황이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생활을 끝마치고 코치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죠. 제가 빠지면 국가대표 성적이 떨어지니 조금만 더 선수생활을 해 달라는 요구에 은퇴시기를 놓친 거죠.”

이은철 대표는 무작정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인생 제2막’의 시작이었다. “이민 가 미국에서 살 때 컴퓨터를 전공했어요.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 여동생이 있었는데, 벤처기업에 원서를 내달라고 부탁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죠.”

그러나 이 대표의 실리콘밸리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하기는 미국으로 건너간 이 대표 처지 자체가 축복을 받으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 생활 얘기를 꺼내면서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미국에 살고 계시면서 자신을 맞아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사격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머니 때문이라고 주저 없이 얘기했다. “어릴 때 처음 총을 잡게 해 준 분이 어머니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사격하는 것을 반대하셨지만, 어머니는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가 사격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어요.”

아들 ‘이은철’이 한국에서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직접 이곳저곳 뛰어다니셨다. 힘들어 사격을 그만두고자 했을 때도 어머니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옆에서 용기를 주셨다. 어머니의 ‘사격’에 대한 사랑은 이은철 ‘선수’ 이상이었다.

“그런 어머니와 상의도 없이 그냥 은퇴를 해 버렸어요. 그러고는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간 거예요. 그때 어머니 심경이 어땠을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게 공항에서 만난 어머니는 이 대표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왜 네 마음대로 은퇴했느냐고 한마디라도 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저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이 대표를 데리고 간 곳은 조용한 마을의 한 주택이었다. 어머니는 이은철 대표의 눈을 가린 채 집안으로 안내했다. “어머니께서 제가 은퇴하고 미국으로 간다고 하니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모아 제가 살 집을 마련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걸 저에게 ‘깜짝 이벤트’로 놀래켜 주고 싶으셨던 거예요.”

이 대표의 눈에서 왕방울만 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누구보다 이 대표의 은퇴가 가슴 아프셨을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니 기자도 순간 눈물이 올라왔다.

그렇게 실리콘밸리 생활이 시작됐지만,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상황이 좋지 않았다. 2001년 들어서면서 미국 정보기술(IT) 업계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실리콘밸리에도 불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다니던 회사도 직원이 2000명에서 순식간에 8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대표는 회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매출이 전 직장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작은 회사로 이직했지만, 그것이 이 대표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나한테 딱 맞는 회사였어요. 소프트웨어를 파는 회사였는데, 연 매출 20억 원이었던 회사가 내가 들어간 후 100억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완전 승승장구했죠.”

그러나 회사가 조금 커지니 일본회사가 바로 인수를 해 버렸다. 이 대표는 고민 끝에 한국에 돌아와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고는 이동통신 시스템용 임베디드 알고리즘(컴퓨터가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한 단계적 방법) 개발 전문업체인 인텔라를 설립했다. 건물 내부와 지하(인빌딩) 무선통신 시스템에 필수적인 디지털 처리부를 개발·공급하는 회사였다.

“한국은 ‘무선’에 강합니다. 무선중계기는 3개월 가량이면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 현금화를 빨리할 수 있는 사업이죠. 현금화를 빨리해서 점점 더 어려운 기술로 진입하자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인텔라는 지난 8월 세계적 IT 기업인 퀄컴으로부터 2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만큼 회사의 잠재력을 높이 산 것이다. “그래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지난해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KT의 테스트에 들어갔는데 직원 25명의 월급 줄 돈이 없었습니다. 차 팔아서 직원 월급을 줘야 했어요.”

다행히 테스트를 통과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제품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5억 원 가량 매출을 올렸고, 올해 말까지 70억 원까지는 거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100억∼15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잘하면 올해 말부터는 수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10억 원 정도하고 내년부터는 40억∼50억 원의 수출을 이뤄낼 것입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 나름 안정된 자리를 잡았던 이은철 대표는 왜 ‘한국행’을 택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이은철 대표의 ‘제2의 인생목표’를 찾게 해 준 고마운 은인이 있었다.

성남 =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mail 임대환 기자 / 사회부 / 차장 임대환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관련기사 ]
▶ 삶을 바꾼 은인은 강초현 선수 ?
[ 많이 본 기사 ]
▶ ‘에이즈’ 20대女 상습 성매매…“10∼20명 성관계”
▶ “사타구니 채혈 필요”···女환자 속옷 갑자기 내린 의사 유죄..
▶ ‘김정은 참수부대’ 핵잠수함 미시간호 타고 한국 왔다
▶ 아사히 “북한, 군·비밀경찰요원에 실탄 지급 시작”
▶ 40대 의사가 실습 여학생과 술자리 뒤 성폭행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 특수작전용 ‘잠수정’ 탑재 포착英언론, 요원들 부산 입항 보도美해군 “일상적 항구방문일 뿐”작전 내용 안 알리는 게 관례수중침투용 S..
mark40대 의사가 실습 여학생과 술자리 뒤 성폭행
mark가수 박기영, 탱고 무용수 한걸음과 결혼
결혼 앞둔 경찰관이 대학 女후배 성폭행해 체..
‘대외관리’ 특별요청한 특수활동비… 비중은 靑..
범인 잡기보다 계급 따기… 경찰, 국감날 근무..
line
special news 에이핑크 손나은 참석 행사장에 또 폭발물 ..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이 참여한 행사장에 또다시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제보가 접수돼 경..

line
소득없어 국민연금 못낸다던 무직 34세 수입차..
현행법상 금지인데… 경찰 勞組 설립 논쟁 불..
아사히 “북한, 군·비밀경찰요원에 실탄 지급 시..
photo_news
체조 금메달리스트 “팀 닥터에게 성추행 당했다”
photo_news
누드사진·재벌과 계약결혼 러시아 패리스 힐턴 “大選 출마..
line
[연재소설 徐遊記]
mark(1228) 60장 회사가 나라다 - 1
illust
[인터넷 유머]
mark남자가 지킬 10가지
mark분노가 치미는 인터뷰 기사
topnew_title
number “사타구니 채혈 필요”···女환자 속옷 갑자기 ..
‘에이즈’ 20대女 상습 성매매…“10∼20명 성..
의붓 할아버지가 6년간… 10代 소녀 두차례..
금융기관장 인사,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이유..
박근혜 불출석… 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정 착..
hot_photo
강남역 한복판 옷가게에 승용차..
hot_photo
‘가시나’ 선미, 파리서 겨울 패션..
hot_photo
文대통령, T-50에 올라 ‘엄지척’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최중홍)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