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통해 엿보는 화가의 삶과 예술세계

화가의 얼굴, 자화상 / 로라 커밍 지음, 김진실 옮김 / 아트북스

자화상이라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80여 점의 그림, 선화, 판화에 자신의 얼굴을 남겼다. 부드러운 선의 학생 시절부터 중장년기를 거쳐 죽음 직전까지 40여 년간 거울 앞에서 연기하듯 자화상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자화상 속 렘브란트는 머리 색깔부터 눈, 코의 묘사가 제각각이다. 급부상하는 신진화가, 제자도 의뢰인도 없는 곤궁한 노화가의 면모를 드러내는가 하면, 모피를 차려입은 성공한 사업가나 터키의 술탄이나 고함 지르는 거지 같은 모습으로도 자화상에 등장한다.

렘브란트는 세월과 더불어 변모하는 외양과 성격, 희로애락의 감정을 자화상에 담아냈다. 화가로서 자화상은 자기 연구의 과정이며 산물, ‘그림으로 적은 자서전’이었다.

별도의 모델료 없이 언제 어디서나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자화상은 화가들이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는 장르였다. 자화상은 주문 제작도 아니고 팔리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달랐다. 렘브란트가 표정 묘사 연습, 홍보를 위한 방편, 성경 신화의 인물을 위한 모델, 혹은 화가 특유의 ‘배우들’로 제작했던 자화상은 당대에도 팔렸다.

이 책은 렘브란트를 비롯해 뒤러, 다비드, 쿠르베, 고흐, 앤디 워홀 등 자화상으로도 유명한 서구미술사 유명 화가의 자화상에 다가선다. 영국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15세기 초반 얀 반에이크 이후 20·21세기 작가 신디 셔먼까지 600여 년간 발표돼 온 자화상을 통해 서양미술사를 재조명한다.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거나 감사 사랑 원망 등 내밀한 표현 욕구의 표현이며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자화상에서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읽어낸다. 화가 자신이 느끼고 상상하고 믿었던 무엇을 담아낸 자화상에서 관람객도 화가를 탐구하는 한편, 시공간을 초월하는 정신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비밀, 눈, 무대 뒤편, 거울, 외로운 영혼들, 작별 등의 주제별로 이 책에는 149점의 자화상이 등장한다. 책 표지의 뒤러 자화상을 시작으로, 보티첼리, 틴토레토, 벨라스케스, 고야, 뭉크, 실레, 몬드리안 및 여성화가 엘리자벳 비제 르브룅·메리 커셋·프리다 칼로, 그리고 제프 월, 루시안 프로이트 등 현대작가도 자화상으로 만날 수 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