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 식탁엔 매번 120가지 요리 올랐다

서태후와 궁녀들 / 룽얼 구술, 진이·선이링 지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19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인 청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서태후의 식탁에는 매끼마다 120가지가 넘는 요리가 올라왔다.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쳤을 때를 제외하곤 음식수가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서태후는 같은 음식을 세 번 이상 뜨지 않았다. 어떤 음식을 세 번이나 떴다는 것은 틀림없이 태후가 좋아한다는 걸 의미하고, 또 이러한 사실이 아랫사람에게 알려지면 나쁜 마음을 품은 자가 이 요리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직접 들려주는’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책은 부부인 저자들이 1940년대 만난 노궁녀의 구술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한족 성은 ‘허(何)’이고 만주 성은 ‘허서리(赫舍里)’로 짐작되는 이 노궁녀는 서태후를 8년 동안 시중을 든 인물이다. 궁에 있을 때는 ‘룽얼(榮兒)’이라 불렸고 서태후는 ‘룽’이라고 불렀다.

만주 기하인(旗下人)으로 13세 때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에 들어온 룽얼은 서태후가 거처했던 저수궁(儲秀宮)에서 일을 배우고 태후의 담배 시중을 들었다. 18세 때 서태후의 명으로 환관인 류 씨 성의 태감에게 시집을 갔던 룽얼은 1년도 채 안 돼 서태후의 특별허가를 받아 궁으로 다시 돌아왔다. 궁녀는 한번 궁을 떠나면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관례에 비춰볼 때 이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서태후와 광서제가 시안(西安)으로 피난할 당시 수행하기도 했던 룽얼은 이듬해 환궁했을 때는 나이가 들어 궁에서 나왔다. 청대에 궁녀는 25세 이전에 궁을 떠나야 했다. 남편이었던 류 태감은 아편쟁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룽얼의 생활은 이후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말년에 베이징(北京)대 중문과 출신의 부부 교사였던 저자들과 이웃으로 지내고 이들 부부의 살림을 돌봐주는 과정에서 청 황실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됐다.

저자 부부는 룽얼의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했으며 남편 진이(金易)가 1980년대 후반 ‘자금성’ 잡지에 ‘궁녀담왕록(宮女談往錄)’이란 제목으로 청 황실의 이야기를 연재해 빛을 보게 됐다. 책은 1990년대 초반 같은 제목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들에 따르면 책의 내용은 크게 ▲궁녀의 생활 ▲서태후의 일상 ▲광서제에 관한 일화 ▲기타 사소한 이야기들 등 4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서도 함풍제의 황후이자 동치제의 생모, 광서제의 양모로 반세기가량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누렸던 서태후의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가 눈길을 끈다.

신선한 과일을 담은 5∼6개의 항아리를 비치해 안 좋은 냄새를 없앴던 침전과 대소변을 해결했던 단향목 관방(官房·요강), 상·하체를 씻는 용도가 구분된 두 개의 은목욕통 등 서태후의 화려했던 삶과 미신을 깊이 믿었던 성격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시안으로 피난 가기 직전 광서제의 애첩인 진비를 우물 속에 밀어넣어 죽인 서태후의 잔인함도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똑바로 누워 잘 수 없었던 궁녀의 삶과 태감들과의 관계 등 황실의 사생활이 가감 없이 펼쳐져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