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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2년 11월 23일(金)
“한국, 춘추전국 周 닮아… 주변국에 ‘영감’ 주는 나라 될 것”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 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21일 경복궁에서 “도덕성과 용기를 함께 갖춘 새로운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조선의 선비정신을 새롭게 살려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49·한국명 이만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교양학부) 교수에게서 샘물을 길어올리듯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끊임없이 솟구쳐 나왔다. 그는 하나의 범주에 집어넣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21일 경복궁 경회루에서 만난 그는 “여기가 내 집”이라고 조크했다.

막힘없는 한국말로 말을 이어가는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청년 같았다. 하지만 인문학과 오늘의 정치·사회 문제를 넘나드는 그와의 대화는 결코 느슨하지 않았다. 경복궁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담 너머의 현대적 빌딩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페스트라이쉬 교수 역시 현대의 문제에 천착하면서 한국의 전통에 대해서도 심오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학자다.

미국 내슈빌이 고향인 그는 한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남매를 두고 있으며 2007년부터 한국에 정착했다. 그가 최근 노엄 촘스키, 프랜시스 후쿠야마, 벤저민 비버 등 13명의 세계적인 석학들과 한국의 미래를 놓고 벌인 토론을 모아 ‘세계의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다산북스 발행)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인터뷰를 씨름에 비유했다. 실제로 이 책에서 때로는 인터뷰이와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에 세계 석학들 중에서 몇몇은 한국문제에 관심 없거나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신문 기사를 번역해 석학들한테 보내는 등 공을 들였고, 그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그는 자신이 한국사람이 다 됐다고 말했다. 무척 바쁘게 사는 라이프 스타일을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의 선비정신을 높게 평가한다. 선비정신이야말로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키워드며 책임감 있는 엘리트 전통이라는 것이다. 경회루 연못을 바라보면서 시작된 인터뷰는 그가 잘 간다는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보리밥집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대문호였던 연암 박지원에 대해 연구하셨는데, 연암의 어떤 점이 매력인가요.

“연암은 당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특히 서민 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지식인의 책임도 강조했지요.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사람이죠. 어려운 상황에서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임금에게 자기 제안을 내놓기도 했지요. 문화를 바꾸려고 했고,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교육정책으로는 문화를 바꿀 수 없어요. 하지만 문학과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번역한 연암의 단편소설은 하버드대 교재로 쓰였다고 들었습니다.

“양반전, 광문자전, 민옹전 등을 번역했습니다. 거지를 주인공으로 한 광문자전을 읽고 감탄했습니다. 현대소설도 거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기 어려운데, 조선시대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한문소설을 비교하면 중국과 일본에는 연암이 쓴 것과 같은 소설이 별로 없어요. 양반의 위계질서가 있는 조선에서 일본, 중국에서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주인공이 나오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죠. 연암의 상상력은 지금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유머도 많고 사회모순을 재미있게 표현했지요. 외국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가수 싸이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으로 뻗어가고 있는 한류가 장기적으로 생존력을 갖추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싸이의 성공은 좋지만 저는 그것이 한국의 대표문화인지는 의문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심도 있는 한류가 시작됐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류라고 하면 노래, 영화, 드라마만 생각하지만 학자들의 좋은 책, 인문학 등도 한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뉴욕타임스를 보면 한국 유명 학자의 기고문이 별로 없어요. 한국의 외교, 국방, 경제 관련된 책은 있지만 문화 쪽은 제대로 번역된 게 없어요. 서울대 미술사전공 이주형 교수가 쓴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런 인문학 책을 영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시지요. 아시아 국가들은 한국과 일본의 환경 중에서 어떤 쪽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할까요.

“사막화 방지를 위해 미래숲 권병현 회장님과 같이 몽골에 나무를 심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환경 분야 혁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아시아 다른 국가들도 따라올 것입니다. 예컨대 한국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그런 것도 다른 나라로 전파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문제는 이제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세계의 석학들과의 대담인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한국이 춘추전국시대 주(周)나라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한문학을 공부한 학자로서 볼 때 한국은 주나라와 닮았습니다. 주나라는 주변 국가들 가운데 경제력·군사력을 주도하는 대국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여러 주변 국가들과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문화와 규범도 타 국가들에 많은 영감을 줬지요. 한국도 벌써부터 그럴 기미가 보여요. 한국이 중국처럼 크지는 않지만 여러 나라와 유대관계를 갖고 있죠. 동북아의 역학관계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중국을 보면 일본 등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요. 대일관계도 지금은 상황이 안 좋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도 한·중·일 3개국 중에서 한국이 더 편한 국가죠. 한국이 절대적인 군사적, 경제적 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정학적으로 자기만의 기운을 유지하면서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 것 같습니까.

“미국 대선의 경우 여론조사에서는 서로 비슷했지만 도박 사이트에서 오바마 70, 롬니 30으로 나왔어요. 베팅 사이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돈이 걸린 문제니까 정확도가 높지요. 한국의 경우 누가 될지 모르겠어요. 다만 미국과 비교하면 3명의 대통령 후보의 차이점이 그리 크지 않다고 봐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미국에서 정치를 한다면 공화당은 아닐 것입니다. 복지 측면에서 박 후보가 오바마보다 왼쪽에 있을 수도 있어요.”

―한국의 복지 논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급속한 노령화 추세 등을 감안하면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의 복지 공약은 현실성이 있을까요.

“복지 공약은 큰 의미가 없고요, 장기적으로 정책을 실천하는 프로세스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일반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장경제 방식으로 돈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옆집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는 것과 같은 ‘마음의 관습’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공동체의식이 너무 약해져서 모든 것을 예산으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한 퍼주기식 복지보다는 자립 능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자립능력은 매우 중요하며 시민들이 정부나 조직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무상급식 등은 찬성하지만 다만 큰 의미의 복지를 생각한다면 정부가 무조건 준다는 것은 안 좋은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미국의 복지 문제는 어떤가요.

“미국에는 가짜 보수주의자가 많죠. 자립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어요. 미국의 재정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심각한 건지, 정부가 재정관리 차원에서 과장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미국도 군사비 지출 등을 줄이면 기본 건강보험을 제공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그의 교유범위와 국제적 네트워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93년 하버드대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차를 대신 주차해준 일을 계기로 그와 친해졌다. 그는 예일대 중국문학과를 전체 우등으로 졸업한 수재다. 1998년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언어문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 대만국립대, 서울대 등 세계 명문대를 거쳤다. 첼리스트 요요마도 그의 친구다. 현각 스님은 우연히 절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됐다. 얘기를 나누면서 그와 현각 스님이 예일대 83학번 동창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하다. 그는 “외할아버지는 1950년대 격변기 때 룩셈부르크의 세무성 차관을 지냈다”며 “어머니도 룩셈부르크 사투리와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구사하는 분”이라며 웃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의 사장을 지냈다고 한다.

―룩셈부르크가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지 않나요.

“유럽과 동북아시아는 차이가 많지요. 유럽의 경우 공동체라고 해도 갈등이 끊이지 않았어요. 200년 동안 그런 갈등이 계속됐죠.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있지요. 1950년대 외할아버지는 유럽의 철강석탄연합이 태동했을 때 활약했고 그것이 나중에 유럽연합(EU)으로 진화됐습니다. 동북아의 경우 오래전부터 교류가 많았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요. 유럽과 동북아의 큰 차이는 유럽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반면 동북아는 한번만 겪었다는 점이에요.”

―이번에 쓴 책에서 한국의 정치에서 아웃사이더 전성시대를 맞았다고 하셨지요. 이 책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 대학 석좌 교수는 배우에서 주지사로 당선됐던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안철수 대선 후보가 비정치적인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슈워제네거의 경험은 정치인이자 주지사로서의 경험과는 거리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의 정치적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안철수 대선 후보와 연구를 함께 진행한 적도 있지요. 그는 어떤 면에서 정치적으로 균형이 잡힌 사람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자고 얘기하기도 했죠. 그런 의미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다만 현실을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다고 해도 안 후보가 정치하기 굉장히 힘든 상황입니다. 그분의 성격을 생각하면 여의도에서 밤늦게 정치인들과 만나서 딜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명의 대통령 후보 모두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포퓰리즘은 로마시대의 검투사 경기와도 같아요. 대중이 심각한 문제에 몰두하지 않고 게임만 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치인들이 공약이나 꿈을 얘기하지만 현실은 얘기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소비 문화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도 소비하는 물건처럼 생각하죠. 결국 정치가도 그의 장기적 정책방향과는 상관없이 엔터테이너가 돼 버렸습니다. 한국의 1950∼1970년대 상황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 민주화는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주변사람들과 모여 토론하는 공론의 장이 있었어요. 시민들은 서로 토론할 수 있는 민주주의 현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지요.”

―미국 소규모 공동체 파괴를 다룬 ‘나홀로 볼링’이라는 책도 있지만 소규모 공동체가 깨진 것이 문제인가요.

“미국의 경우 예전에 선거할 때는 라이온스 클럽이나 재향군인회 등에 가서 소통을 해야 했지요. 그 집단이 그만큼 힘이 있었으니까요. 개인과 가정, 지역이 연결돼 참가하는 조직이 이제는 거의 다 죽었어요. 개인과 정부의 그같은 간극 때문에 정치인의 엔터테이너화가 진행됐어요. 모든 사람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 조직이 필요합니다. 원래는 이런 조직을 통해 불만 등을 전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죠. 옆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잖아요. 그런 것이 포퓰리즘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로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이는 복지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저도 마찬가지로 과로죠(웃음). 한국 경제의 핵심이 반도체 개발인데 이게 속도로 결정됩니다. 경제 핵심이 반도체이다 보니 모든 게 속도로 결정되고 있고, 이것이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빨리 빨리’는 한국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죠. 다른 나라에도 정보기술(IT)이 있지만 한국이 유난히 빠른 속도로 발전했죠. 장기적으로 과로로 인한 비용 등도 감안한 정책이 필요하지요. 100년, 500년 후 미래 한국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걸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날이 갈수록 한국이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이 하는 일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심어준다면 이 또한 세계 곳곳의 청년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값비싼 물건을 소비하는 데 만족감을 느끼는 등 천박한 삶에 빠진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 세대에 영감을 불어넣을 감동적인 코리안 드림을 만드는 일이 한국인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간적이고 사려 깊은 기술의 권장, 타인에 대한 배려, 인본주의적 전통과 글로벌한 관점의 재결합 등을 코리안 드림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형형한 눈빛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이같은 말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한국사회의 의표를 찌르고 있다.

인터뷰=예진수 문화부장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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