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가진 지도자가 위기에 더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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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리더십 / 나시르 가에미 지음, 정주연 옮김 / 학고재

‘광기에 가득 찬 트럭 운전사가 인도로 차를 몰아 희생자가 속출할 때 교회는 그들의 장례식만 치르면 되나. 아니면 그 트럭 운전사를 끌어내려 더 이상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에서 구해야 하나.’

히틀러 암살 운동에 관여하다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정의론이다. 대량 학살을 일으킬 수 있는 지도자의 광기에 휘둘려서는 안 되고 이 지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책은 본회퍼의 주장과 달리 광기가 오히려 위기 때 뛰어난 리더십으로 바뀐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제정신의 반대법칙’이라는 서론 제목이 재미있다. 정상인인 토니 블레어나 리처드 닉슨이 훌륭한 지도자이긴 하지만 윈스턴 처칠이나 존 F 케네디만큼 불세출의 리더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도발적 견해를 내놓는다. 저자는 2차대전이라는 위기의 상황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처칠, 쿠바 미사일 위기를 용기 있게 돌파한 존 F 케네디, 남북전쟁의 영웅 에이브러햄 링컨, 영국 식민통치 시대에 진정한 성현의 모습을 보여준 마하트마 간디 등 ‘광기의 리더십’을 발휘한 8명의 정신질환을 살피고, 그 속에서 피어난 독창성을 분석한다.

저자는 세계적인 정신과 의사다. 그가 광기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제기한 사람은 아니지만 첨단 정신의학 지식들로 무장했다.

책에 따르면 블레어와 닉슨, 조지 W 부시 등은 평화기에 좋은 리더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난국을 헤쳐나가지 못했다. 기분 장애를 겪은 적이 없지만 순탄하게 살아온 이들 지도자는 고비에 빠졌을 때 낙관적인 착각에 안주했다. 일반적 통념을 따르는 이들은 위기의 파고가 몰려올 때 최악의 지도자가 됐다. 순환하는 기분 장애 경험이 없어 위기가 터지면 끔찍한 난국을 견디기 어려운 기질이라는 것이다. 반면 우울증이나 기분 장애를 가진 지도자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날카롭게 간파한다. 기분고조형 성격의 루스벨트는 그 성격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존 F 케네디가 심각한 질명에서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기분고조형 기질 덕분이었다.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해 거의 죽기 직전이었던 케네디를 구한 것은 드러나지 않았던 의료쿠데타였다.

버클리 등 여러 의사들은 로버트 케네디와 손잡고 약품 남용의 원인이었던 의사 트라벨의 영향력을 꺾어버렸다. 새로운 전문의사들은 근육주사제를 최소화하고 매주 신체단련 계획을 세웠다. 약물을 통제하자 케네디의 성격적 장점이 극대화됐고, 기분고조형 회복력이 증진됐다. 그 덕분에 당당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저자는 처칠의 경우 조증 기질에 따른 대담함보다는 우울증의 고통이 주는 현실주의가 더 빛을 발했다고 평가했다. 처칠은 1930년 10월에 이미 나치의 위협을 경고했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그의 정적 체임벌린은 1938년에도 그 위협의 징후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체임벌린이 뮌헨에서 히틀러와 정찬을 나누는 동안 처칠은 씩씩거렸다.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비열한 정책을 묵과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야비하고 비열하고 인간 이하이며 자멸적인 것이다.”

간디도 평생 불안했고 극도로 수줍어했으며 부정적이며 비관적 기분에 자주 휩싸였다. 간디의 우울과 슬픔은 그의 정치역정에 큰 영향을 줬다.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물질적 풍요를 거부했으며 고행자가 됐다. 그는 공감이 비폭력의 비결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세상의 고통과 오해의 4분의 3을 없애는 방법은 우리가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그들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이다.” 간디는 공감의 기능을 매우 잘 이해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전략으로 이용했다. 영국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간디는 새로운 비폭력 정치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간디는 공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저자는 지도자의 정치적 능력과 정신 건강 사이에는 대체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고 단정한다. 책은 비정상적 상황에서는 비정상적 지도자가 필요하며 상황을 비틀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