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새천년의 ‘불안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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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걸음 /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고 세계 곳곳에서 핫 뉴스가 잇따랐다. 2001년 9·11테러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발발한 전쟁을 비롯해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생활도 급격히 달라졌다.

새 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던 사회·정치·문화적 현상에서 ‘불편한 진실’을 짚어내는 저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석학 움베르토 에코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냉전시대였던 세계가 걸프전, 코소보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열전의 시대로 복귀하는 등 새 천년이 냉전 이전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꼬집는다. 상대국들 사이에서 주변국들이 희생되는 구시대적 전쟁의 소용돌이가 이어지는 등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세상을 주목한다.

전쟁의 속성과 모순을 밝히고 전쟁에 동반되는 강자의 남용과 음모론을 파헤치는 저자는 전쟁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다른 문화와 인종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소통의 부재를 지적한다. 이는 결국 중세시대 십자군 전쟁의 발발과정을 답습하는 것이며,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의 적대적이고 구시대적인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에코는 새 천년 들어 우파 연합의 승리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에 임명된 자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시도한다.

이탈리아에서 2006년 출간된 이 책은 저자가 2001∼2006년 발표한 글을 간추렸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와 주간지 ‘레스프레소’의 기고문과 학회 세미나, 토론회에서 발표한 강연문 중 정치, 대중매체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전쟁, 교육, 과학, 다민족사회, 생명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저자는 특히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타당한 이유나 근거없이 세상에 만연한, 특히 악습에 의해 타락한 세태를 겨냥해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쓴소리를 던진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저자는 선조의 업적을 토대로 건전한 대립과 소통을 통해 인류의 진보를 가능케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것과 새것 사이의 간격, 다른 문명과 인종에 대한 적대감을 없애는 끊임없는 대화의 시도, 이해와 관용의 자세를 강조한다.

책 말미 ‘죽음의 득과 실에 관해’에서 저자는 ‘세상 모든 것은 헛되다’‘좋은 것도 한두 번이다’란 진리를 일깨우며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를 제안한다.

그는 “온통 근사한 일이 벌어지는 이승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그러나 “세상을 바보들의 골짜기라고 생각해 보라”거나 “경이의 원천이자 발견의 기쁨이었던 것들이 세월과 더불어 권태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