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능동적 양육’… 빈곤층 ‘자연적 성장’ 추구

불평등한 어린 시절 / 아네트 라루 지음, 박상은 옮김 / 에코 리브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도 한참은 지난 전설의 말이 돼 버렸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고소득층이 밀집한 강남에 사는 자녀들은 이른바 ‘좋은 대학’에 대거 진학하고, 돈이 없는 저소득층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는 어려운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이 책 ‘불평등한 어린 시절’(원제: Unequal Childhoods: Class, Race, and Family Life)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자녀 성공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단초를 제공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 사회는 아직도 많은 미국인이 ‘아메리칸 드림’을 믿고 있다. “우리가 보고 들으며 자란 ‘아메리칸 드림’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이상향이다. 성실히 일하고 규칙을 지키면, 신께서 주신 재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으로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한 이 말처럼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큼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이 이념은 부자와 빈자를 막론하고 절반이 넘는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이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러나 이 같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미국 사회가 계층화됐다고 단언한다. 부(富), 재밌으면서 세련되고 보수도 높은 직업, 좋은 교육, 개인 소유의 주택 등과 같은 가치 높은 자원은 결코 균등하게 분배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각 계층이 가진 여러 자원이 자손에서 자손으로 세습된다며, 육아에 작용하는 문화적 논리가 가정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미국의 교육 현장과 가정의 모습을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9∼10세 아이를 가진 백인, 흑인, 서로 다른 인종간의 결혼으로 이뤄진 열두 가정을 중산층(상위 중산층 포함), 노동자 계층, 빈곤층으로 나눠 탐구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문화의 구조에 불평등이 스며들어 있음을 찾아낸 것. 저자는 가정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모여 자녀 양육에 대한 문화적 논리를 형성한다며 각 가정의 차이는 의미 있는 유형으로 ‘범주화’된다고 말한다.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이의 ‘집중양육’을 강조하는 문화적 논리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들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범주화’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중산층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자녀 양육의 특징 중 하나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토론이다. 이들은 자녀를 ‘발전시키는’ 사람으로 여기며 집중적으로 자녀의 재능을 키우려 애쓴다. 중산층의 자녀는 야외활동이 많고 어른의 지도를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권리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뿌리 내린다. 자신의 취향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교육기관에서도 여유롭고 능동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미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다른 이와 상호작용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의 부모 역시 아이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기본적인 생계를 꾸리기도 바쁜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의 부모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의 옷을 세탁하고 아이를 재우고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중산층 부모와 달리 이들 부모는 아이의 집중적인 발전, 특히 조직적인 여가 활동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이 훌륭한 양육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란 노동자·빈곤층 자녀는 상대와의 관계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각종 공적 기관과 접촉할 때도 부담을 느낀다. 노동 계급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기관 내의 권위 있는 어른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단어의 여러 의미를 토론하고, 부모는 언어를 자녀의 훈육 메커니즘으로 삼기도 한다. 이런 양육 방식으로 자녀는 풍부한 언어 소통 능력을 얻어 자신만의 언어를 활용해 협상도 한다.

하지만 빈민층 가정에서 언어는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만 담당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협상은 없고 부모는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린다. 그 결과 아이들은 말대답 없이 복종할 뿐이다. 언어적 의사소통은 아이의 어휘력과 독해 능력을 기르는 중요한 수단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일방적인 언어 사용은 아이의 학습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빈민층 가정은 자녀 교육의 주도권을 교사나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넘기는 경향을 보인다. 이 같은 수동적 태도 역시 아이의 학업 성취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결국 대부분 부모처럼 주변부 삶을 살게 된다.

책은 미국 사회를 분석 대상으로 다뤘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교육이라는 공통분모에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이라는 부제가 말하 듯 책의 내용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전설이 돼버린 한국의 상황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